화양 가는 길

시 읽는 세상

2015-01-21     연지민 기자

임승빈
 
화양華陽
꽃볕이라니! 
미원米院 지나 청천靑川 
무릉리武陵里 도원리桃源里 거쳐 화양을 가는데 
느닷없이 퍼붓는 눈발이 앞을 막는다
내 가는 길을 지운다
화양은 찾아간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 화양도 물 꽝꽝 얼고
눈 내리고 바람 맵긴 마찬가지라고
산마루 저 소나무 집채만한 바위
길가에 죽 늘어선 억새들까지
하얀 눈 뒤집어쓰고 가고 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는데
퍼붓는 눈발은 내 앞만 가로 막는다
내 길만 지워버린다
도원리 무릉리 지나 청천 미원을 거쳐
지금도 나는 화양을 가고 있는데
가고 또 가고 있는데
 
※ 화양, 꽃볕에서 덜컥 내려앉은 마음이 눈발에 걸려 흔들립니다. 쉬이 도달할 수 있는 무릉도원도 아니지만, 열망의 그곳조차 냉엄한 세계가 펼쳐질 것을 예고하듯 퍼붓는 눈이 길을 막아 세웁니다. 익숙한 일상을 하얗게 지워내는 겨울 풍경 속에 내게로 가는 오솔길 하나 마음깊이 새겨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