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27

시 읽는 세상

2014-10-22     연지민 기자
황동규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 자연은 가을을 통해 비우는 법을 알게 합니다. 비우고 비워내야만 다시 채워지는 것임을 계절의 윤회로 보여줍니다. 그 윤회 앞에서 시인은 육신의 비움을 읊조립니다. 비움에 우선순위가 있을 리 만무겠지만 그래도 밤빗소리 들을 수 있는 귀는 ‘그냥 두고 가리’라고 말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길이 ‘그냥’ 듣고자 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