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시 읽는 세상

2014-07-16     연지민 기자
백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곱씹을수록 글맛이 진해지는 백석의 시입니다. 별스럽지 않은 풍경이 별스럽게 다가오게 하는 언어의 마력을 시인을 보여줍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는 여름철 개망초 하얀 꽃 망울처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꽃이 이어지다 턱, 하고 가슴에 얹혀오는 가난했던 슬픈 역사까지. 마음도 스멀스멀 저릿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