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진열의 심리적 기제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2014-06-23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무더운 날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어슬렁거리거나 편의점에 들어가 아이스커피 한잔에 1시간을 버티는 것이 필자의 피서법 중 하나다. 그리고 여기에 조그만 발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물건 배치와 종업원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편의점에 가면 소비자가 가장 많이 찾는 음료수 냉장고는 매장 가장 안쪽에 배치한다. 고객을 최대한 안쪽으로 유도해 그 과정에 다른 상품을 노출시켜 추가 구매케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현금자동화기기 역시 문 앞이 아닌 안쪽에 배치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판매 전략은 살 떨리는 수준이다. 미국 할인점 1위인 월마트는 물품 진열을 위해서 심리학자와 인류학자까지 동원해 연구한다. 일단 매장에 들어서면 사람의 기분을 약간 흥분시켜주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마트나 백화점에서의 금지곡은 바이올린 독주곡, 랩이 많은 댄스곡이다. 이는 방문객의 신경을 거스를 우려가 있고 가사가 소비자의 귀를 자극해 쇼핑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래 매장에 머물게 하기 위해 시계를 걸어두지 않고 바깥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을 없애며 오른손잡이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심리를 고려해 주력 상품을 매장 입구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 등이 있다.

상품을 진열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는 연합(Association)이다. 연합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즉 두 개체 사이의 시간과 공간의 근접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두 제품이 가깝게 전시될수록, 자주 노출될수록 구매자의 마음속에 둘 사이의 연결은 강화된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상품 중 연합에 가장 성공한 것으로 대일밴드를 들 수 있다. 손에 상처가 나서 보건실에 오는 학생들 대부분은, ‘대일밴드 주세요’ 한다. 밴드=대일밴드가 돼버렸다.

한편 백화점은 맨 위층에 전문 식당가를 배치하는데 이는 샤워효과(Shower Effect)를 보기 위해서다. 샤워효과란 소비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매장이나 상품을 위층에 배치해 고객 집객 효과가 아래층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마트들은 판매 촉진을 위해 고객의 동선을 의도적으로 좁혀 북적거리는 느낌을 일부러 연출하거나 에스컬레이터를 반 바퀴 돌아서 갈아타게 해 반대편 매장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심지어 계산대의 바닥은 약간 오르막이다. 쇼핑을 끝내고 카터를 밀고 올라오기 어렵게 만들어 더 쇼핑을 하게 만든다. 필자는 청주 시내 대형마트 계산대 근방 바닥에 쇠구슬을 놓아 확인해 보기도 했는데 그 결과는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면 좋겠다.

상품 진열에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있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엔 숙취해소 음료가 편의점 계산대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잘 팔리는 상품과 회전율이 높은 상품은 고객의 눈높이 위치(이 위치를 점령하기 위해 상품 생산업체 간에는 치열한 다툼이 벌어짐)에, 계산대 쪽에는 잔돈을 쓸 수 있는 물건과 그냥 톡 하고 집어갈 수 있는 필수품을 진열하고 있다.

압권은 공단오거리 과일, 야채 가판대의 무뚝뚝한 주인이다. 늦은 밤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과일이며 채소를 구입한다. 늘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만 오늘도 필요량의 2배 이상을 구입했다.

그 가판대의 주인이 진열해 놓은 물건을 구입하다보면 그냥 많이 사게 된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절대로 저지르지 않는 일이기에, 이제 노점 가판대의 상품 진열을 분석할 차례다.

이제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는 것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