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싫어하는 말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2014-01-08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2014년은 말의 해다. 말의 해에 말이 싫어하는 말, 다섯 가지만 피하자. 사회를 볼 때 써먹기 좋은 농담이다.

첫째, 말 머리 돌리는 사람. 말도 귀찮겠지만, 사람도 그렇게 도망가면 안 된다.

둘째, 말 허리 자르는 사람. 말이야 죽겠지만, 사람은 오만해 보인다.

셋째, 말 꼬리 잡는 사람. 말이야 뒷발질을 하면 끝나지만, 사람은 가벼워보인다.

넷째, 말 바꾸는 사람. 말도 버려지면 슬플 텐데, 사람도 의리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말 싸움하는 사람. 말도 평화를 사랑하는데, 사람이 싸우면 되는가.

그런데 사회를 보다보면 학자들도 이 다섯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어느덧 나 자신도 남의 말허리를 자르고 있으며, 어떤 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 머리를 돌리고, 다른 이는 제대도 묻지 않고 말꼬리만 잡는다. 특히 말을 바꾸거나 말싸움을 벌이는 경우는 사회자로서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때 이 농담을 미리 전제해보라. 그러면 훨씬 상대방을 웃음으로 설득하기 쉽다.

앞의 셋은 말의 부위를 떠올리면 기억하기 쉽다. 머리, 허리, 꼬리니 말이다. 그런데 뒤의 둘은 나도 잘 잊어버리는데, 일단 싫은 것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말 바꾸는 사람과 말싸움하는 사람 아닌가. 말을 바꾸면 싸움조차 엉망이 되고 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주 말을 바꾸고 있다. 그 속에서 권력의 연결고리도 느끼고, 자본의 위력도 느낀다. 오늘날 전륜구동이라고 하면 앞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를 가리킨다. 그런데 내가 학생 때 전륜구동이라면 네 바퀴가 다 굴러가는 차를 일컬었다. 전륜(全輪)이 언제부턴가 전륜(前輪)으로 뒤바뀐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요즘은 4륜구동이라는 말도 쓴다. 신문기사를 보니 이렇게 쓰였다.

“H차는 J의 4륜구동 시스템에 ‘H-Track’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A사가 ‘콰트로’, B사가 ‘4매틱’, MW사가 ‘x드라이브’라는 이름의 4륜구동 브랜드를 갖춘 점을 겨냥한 것이다.”

전륜이 앞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라고 정의내린 것은 자동차회사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차를 전륜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반인이다. 모든 자동차가 뒷바퀴로 굴러간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구동장치를 앞바퀴로 옮기면서 대세가 되자 그것을 일컬을 말이 필요했고, 전륜이라는 기존 단어의 내용을 바꾸거나 유린하면서까지 언어를 장악하고 만 것이다. 나의 교과서 내지 사전적 지식이 대기업에 의해 무시된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국어사전을 샀다. 국어사전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영어사전을 사려는데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벌어진 일이다. 제대로 된 국어사전도 없으면서 영어사전을 사야 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그래서 영어사전 살 돈으로 국어사전을 사버렸다. 당시 졸업상으로 받은 작은 국어사전이 있었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조악했고, 두껍고 내용이 많던 영어사전에 비하면 보잘 것이 없었다. 치기어린 시절의 자랑이었다. 너희들이 영어사전 살 때 나는 국어사전 샀다! 그러나 덕분에 영어선생님한테는 구박 많이 받았다.

모 유력신문사에서 ‘유감’(有感)이라고 썼길래 문맥상 서운함이 남는다는 뜻이라 ‘유감’(遺憾)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가 그건 자기내식의 정의라는 답변에 혀를 내두른 적도 있다.

언어의 정의와 표기법은 바뀐다. 아버지의 맞춤법이 틀렸다고 무시하던 내 시야의 옹졸함에 다시금 놀란다. 여러분은 틀리지 않았다. 다를 뿐이다. 그저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나이를 먹은 것은 죄가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죄일 뿐이다. 말의 해, 말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