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淨化)

生의 한가운데

2013-04-16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쌍계사 벚꽃을 보러 가겠다고 나섰지만 차가 밀린다는 교통 정보를 듣고 행선지를 바꾸었다. 도착한 곳은 계룡산 자락의 신원사였다. 절 입구는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어 어릴 적 살던 고향 마을에 찾아온 것처럼 정감이 갔다.

계곡에는 봄을 준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직은 피우지 못한 푸르름이 겨우내 몸 단장을 미루었던 나무줄기에 생기를 주는 듯 했고 황사로 인해 뿌옇던 하늘도 투명한 햇살을 쏟아냈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배꽃의 행렬에 내 기분은 꽃처럼 환해졌고, 열일곱 소녀로 돌아가 고향집 뜰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배꽃 사이로 분주히 드나드는 벌들의 행렬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한 꽃에 머무르지 않고 꿀을 찾아 부지런히 다른 꽃 속을 드나드는 벌들에게서 사람의 사는 모습을 엿본다. 그토록 열심히 모은 꿀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벌들에게 달콤한 꿀을 먹으면서 아직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이제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했다.

남편의 사진기 앞에서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매화 향기에 취하고 불경을 읽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취해 나는 세속의 시름을 잊으며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했었다. 어머니께 너무나 불효를 하여 가슴이 아파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남편과 자식들에게 화를 많이 내어 가족들을 불편하게 했다.

기도를 하러온 불자들의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선한 자의 눈에는 모든 게 선함으로 보인다면 지금 이 시간은 나도 선한자이고 싶다.

머리를 삭발하고 세속의 욕심을 버린 채 부지런히 손수레를 끌고 열심히 일하는 젊은 남자를 살핀다. 내 머리 속에 복잡한 상념들과 욕심들이 무너져 내린다.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리라. 사랑하는 마음만 남겨놓고 다 잊고 가리라 다짐한다.

잠시 일어나 대웅전 뒤뜰을 걷는다. 코끝을 스치는 맑은 공기, 자목련의 요염한 모습, 고운 새소리와 목탁소리의 어울림이 삶에 지치고 찌든 내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날개를 달아준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매화꽃잎이 눈송이처럼 예쁘다. 파란 하늘에 매달린 연분홍 매화꽃을 향해 내 마음을 전해본다. 은은한 향기를 품은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잎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