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34>

영춘제일교회

2006-08-16     충청타임즈

단양서 뿌리내린 94년 복음의 역사

당시 영월구역 조근영 담임목사가 영월과 영춘을 오가며 예배를 인도했다. 특히 영월중앙감리교인 김미애 전도 부인은 일시 영춘교회에 머물면서 복음전파에 전력했다. 이즈음 경상도에서 예수를 믿다가 이사온 이태응 권사 가정을 비롯해 최인식. 이선숙. 지경구 외 70여명의 교인이 모이게 됐다.

초가에서 장소가 협소해 예배에 불편을 겪자 1930년 엄기범씨가 개인의 땅을 구입해 엄대환. 조재국. 이태응 권사 등. 모리스 선교사의 협조로 예배당을 신축 봉헌했다.

일본의 정치 탄압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한성태 전도사가 부임하고. 엄대환. 조재국. 이태응 권사 최인식씨 등이 힘을 합쳐 믿음과 기도로 교회를 지키며 교회는 부흥 발전해 자립의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영춘교회 교인들의 굳은 믿음과 한 전도사의 업적으로 크게 꼽는 것은 일본정치 탄압과 한국전쟁 속에서 교회와 사택을 꿋꿋하게 지켜낸 점이다. 1953년 한 전도사가 전출되고. 최정덕 전도사가 새로 부임했다. 최 전도사는 청소년들이 흥미를 느끼면서 교육과 복음현장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청소년 프로그램에 총력을 기울였다.

1966년 2월 23일 교회내 분열로 인해 영춘면 하리에 영춘제일교회가 초가 8칸의 예배당을 마련해 교인 60여명이 나갔다.

그후 38년만인 지난 2002년 갈라져 있던 지역의 두 교회 (영춘교회와 영춘제일교회) 교인들은 제일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고 헌당식을 갖기에 앞서 예배당에서 해당 두 교회가 통합하기로 결의하고. 영춘제일교회 김기식 목사를 담임으로. 영춘교회 정수환 목사를 부담임으로 정했다. 그 후 두 교회 통합에 성심을 다했던 김기식 목사는 은퇴하고. 정수환 목사도 교회를 떠났다.

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

"목회 방향성을 어디에 두고 있냐"고 질문을 하자. "선교"라고 말하는 박 목사는 두 교회가 통합하면서 영춘제일교회를 시무하게 됐다.

"37년 긴 시간 만큼이나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를 두고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몇 년 지난 지금은 교인들간의 갈등의 골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박진환 목사는 요즘 기도제목이 생겼다. 그것은 교회사택으로 사용하던 옛집 'ㄱ'자형 안채를 문화재로 등록해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싶다며 옛집으로 안내했다.

인적이 끊긴지 오래돼 지붕이 허물어지고 마당에 풀은 무성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기둥과 보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튼튼하고 구조도 견고하게 남아 있어 옛날 선조들의 얼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박 목사는 이 옛집이 "100년가까이 된 건물로 기독교적 역사 의미도 크지만 한국미의 발견과 사라져가는 근대 한옥의 보존이라는 점. 그리고 민간차원의 문화유산 보존·활용의 모범적인 사례로 그 의미가 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영춘교회 창립 100년 기념행사로 단양읍쯤에 영춘교회 지교회를 개척하고 싶다며. "구인사의 영향력이 큰 영춘지역에서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관계는 지역사회의 개인. 가족. 집단. 조직체의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선교에 대한 이해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박 목사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다. 교회가 사회로 나아가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선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춘제일교회는 연말 영춘 초·중학교 졸업식 때 장학금 30만원씩을 주고 있으며. 이웃 미자립 교회 6곳을 돕고 있다.

영춘지역 40여년 구인사 역사에 비해 94년 결코 짧지않은 기독교 복음의 역사를 통해 영춘제일교회는 지역의 미래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전위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