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김예식의 '이야기 天國'

4. 요괴의 복수로 남이는 억울하게 가다

2006-08-11     충청타임즈 기자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 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 대장부

이 한시는 청년장군 남이(南怡)가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는 유명한 시이다.

남이는 용맹과 무략이 뛰어났고 기상이 또한 호방하여 세조3년에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재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눈에는 요괴가 보일 만치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한 여종이 보자기를 덮은 바구니를 이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보자기 위에는 얼굴에 분을 바른 자그마한 요괴가 하나 앉아 있지를 않은가. 괴이하게 여긴 남이는 그 여종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 여종은 한 대갓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남이는 그 문밖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필시 무슨 변이 있으르라 여겨서였다. 오래지 않아. 집안에서 곡성이 터져나왔다. 기어코 탈이 나고 말았구나 싶어 남이는 황급히 대문을 두들겼다.

"웬놈이냐"

우거지상이 되어 나온 하인은 상대가 어린 아이인 것을 알고는 냅다 소리부터 지르고 있었다. 남이는 우선 호령부터 했다.

"방자하구나. 이놈! 어서 안으로 인도하지 못하겠느냐"

"이댁 작은아씨께오서 방금 급사하셨소이다."

"내가 그 일로 왔느니라. 어서 안으로 인도하렸다."

결국 남이는 권람의 부인 이씨를 만났다. 별안간에 딸이 죽어 정신이 하나도 없는 판에, 웬 어린 아이가 나타나 살려낼 수가 있다 하니 믿어도 될지

"좀 전에 여종이 바구니를 이고 들어왔을 것인데, 그 바구니에 무엇이 들었소이까"

"홍시일세."

"그 홍시를 낭자가 먹었소이까"

"그러하네."

"알았소이다."

남이가 방안에 들어서니 낭자는 숨을 멈추고 누웠는데, 그 배위에 아까의 요괴가 올라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요망한 귀신이 감히 어디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느냐."

깜짝 놀란 요괴는 재빨리 달아나버렸다. 요괴가 달아나기가 무섭게 낭자는 큰 숨을 내쉬면서 소생했다.

이런 기이한 일로 인연을 맺은 남이와 권람의 넷째딸 사이에는 곧 혼담이 있게 되었다. 청혼을 받은 권람은, 용한 점장이를 불러 남이의 운수를 물어보았다. 남이의 운수를 짚어본 점장이는 깜짝 놀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반드시 홍안에 재상의 반열에 오를 것이나, 30을 못 채우고 요절할 운세오이다."

낙담한 권람은 이번엔 딸의 운수를 보게 하였다. 점괘는

"낭자의 수명은 더욱 짧고 소생도 없어. 지아비의 복만 누리고 그 화는 보지 못할 것이니 혼인을 하게 하오소서."

이런 연유로 권람은 남이를 사위로 맞았다는 얘기였다.

남이가 역모로 고변을 당하며 그 증거로 제시된 것이 앞의 시(詩)이니, '男兒二十未平國 '이면의 대목을 간신 유자광(柳子光)이 '男兒二十未得國'으로 고쳐서 제시했다.

예종이 친국을 하니 '未得國'이 아니라 '未平國'이라 남이는 주장했다.

예종은 사람을 시켜 백두산에 있는 그 암벽의 시를 보고 오게했다. 선전관 한 사람이 확인을 하러 가니 분명히 '未得國'이라 새겨져 있지를 않은가! 그대로 보고하니, 남이가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훗날 사람들이 가보니 암벽에 새겨진 글씨는 '未得國'이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요괴의 장난으로 선전관의 눈에는 '未得國'으로 보였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소시 적에 남이가 권람의 집에서 혼내준 바 있는 요괴의 복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