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시 읽는 세상

2013-01-09     연지민 기자
길상호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소리도
타관(茶罐) 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행구 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 요란한 시작보다 조용한 침묵이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주하게 맞이한 1월을 다시 세워 마음을 다스려 보는 시간. 그윽한 차 한잔도 좋고, 향기로운 커피도 좋고, 겨울 혹한을 견디는 자연도 좋다. 세상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침묵의 길을 따라 가보자. 욕심을 내려놓으면 기쁨의 소리는 늘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