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무봉, 시인이 참여하는 정치

타임즈 포럼

2012-12-18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문학이 순결한 것은 사심이 없어서란 생각입니다. 문창시절 고려대 김명인 교수님은 시인이 시를 씀에 있어서 천의무봉(天衣無縫)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천의무봉이란 ‘천국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시(詩)는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완전하여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가 순결하고 시를 쓰는 시인도 순결하다면 작품 속 진정성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순결함 때문이겠지요.

순결함을 생각하면 한 시대 억압의 정치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저항시, 농민시, 노동시를 써서 상처받은 민중(국민)을 치유해 준 힘도 희생이란 순결함이었습니다. 한 시대 그런 문학작품이나 시인들이 있었기에 문인들은 가난해도 힘 있고 행복하며, 이런 힘이 세계에서 시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고 시집이 가장 많이 출판되는 오늘 우리가 있게 한 것이란 생각입니다.

양분된다는 게 꼭 나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서로 견제하므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상을 달리하는 묘미도 있을 수 있겠지요. 우리문단이 ‘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이란 두 축으로 발전해 오면서 ‘문학과 지성’이 서정성과 지성을 추구하는 순수문학을 추구하였다면, ‘창작과 비평은’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역사의식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제 문학의 합수머리쯤에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협회란 큰 틀에서 보면, ‘한국문인협회’와 ‘민족작가협회’로 보아도 그다지 틀리진 않으리란 생각입니다.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신경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도종환>

이즈음 정치사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시인들 작품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성찰하게 해 준 시인이며, 서럽고 애뜻한 농촌 정서를 기초로 하여 민중의 공감대를 이루어 낸 시인이며, 일상의 소소한 물건들을 통해 존재와 삶의 바닥이 따스함을 가르쳐 준 시인이며, 사랑의 여림과 현실참여의 강인함을 함께 보여준 시인입니다.

지금의 정치가 진정성을 가진 시와 시인을 동일시함으로 위로 받고픈 대중을 끌어들여서 자신들 편으로 만들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기형도, 대학시절> 짧은 소견인지 모르지만, 시와 정치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결함만으론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 정치권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는 것인데 시인들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망가지고 버려지는, 정치가 시인을 끝내 죽이고 말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시를 쓰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시와 시인이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순결한 옥토로 남겨야 할 신성지역인데 말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조건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이데아라고 했으며, 연민, 두려움을 부추겨 이성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시인이라며 시인은 <이상국가>에 발을 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켰습니다. 르네상스시대에 보카치오가, 엘리자베스시대에 세익스피어가, 프랑스혁명 때에 루소가 탄생했습니다. 세계문학사에서 위대한 한국인이 탄생하리란 기대를 가져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