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꽃

시 읽는 세상

2012-11-21     연지민 기자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 생애 가장 눈부신 날을 위해 꽃은 핀다. 색색의 화려한 빛깔로 태어나 우주와 만난다. 꽃을 피우기 위해 꽃을 떠받치고 있는 세상은 그래서 기다림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 한껏 끌어올리고, 한껏 밀쳐내며 피운 꽃의 황홀. 눈부실수록 짧은 순간 앞에 향기로 전하는 꽃의 말이 가을로 온다. 가을로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