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무형의 재산에 대하여

특별기고

2012-05-15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지난 번 언젠가 산 이야기를 쓰면서 어린 시절에 느낀 내 아련한 그리움에 대해 잠시 비친 것 같습니다. 어린 날에 느끼던 그런 그리움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고, 그것에 견주기에는 아무래도 강도가 엷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감정의 작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입을 뗍니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서적 허기라고 할 수 있을 터, 그것 또한 허기인 까닭에 때맞춰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그리움이라는 것은 대상이 아주 막연하고 구체적 실체가 아니어서 허기를 채우는 방식에 대해 잘 알지 않으면 사람을 못 쓰게 하는 쪽으로 해소될 수도 있으니 처음부터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할 일입니다.

이와 함께 하나 더 살필 일은 이것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을 때 생기는 어찌 보면 가볍다고도 할 수 있는 상실감이 겹쳐 쌓이게 될 때 정신적으로 몹시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술적 접근이라든가, 여가를 즐기는 갖가지 취미활동들이 이 허기를 채우는 좋은 방법인데, 그것을 통해 자신을 다시 살피게 되고 느슨해진 삶에 가벼운 활력을 준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의 해소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바람직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관조(觀照)입니다. 그리움도 달리 말하면 하나의 욕구인데 그것이 왜 일어나며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밀고 가는지를 차분하게 읽어낸다면 그리움이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해소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이나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다듬어지고 무르익어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 그러니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이 또한 해소의 과정에서 자신이 그만큼 자랄 수 있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리움으로 태운 가슴이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리움으로 젖었던 눈망울이 맑다고도 또한 말할 수 있을 터, 어찌 보면 젊은 시절의 방황의 뿌리이기도 하고,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하게 하는 동기이기도 한 이 그리움이 생명활동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도 이쯤에서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생명현상의 하나인 그리움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저 빛바랜 사진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꽃 못지않은 단풍처럼 고울 수 있기 위해서 이것을 어떻게 데리고 놀아야 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도록 다룰 줄 알기,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즐거운 숙제들 중 하나, 그러니 그리움은 젊은이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그런 정서가 메마르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열리는 날을 맞이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단지 사실이라고만 인식하는 메마른 시각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와 신비라는 해석학적 도구를 활용하기를 그치지 않기,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삶은 그만큼 풍부해지고 부드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