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판

시 읽는 세상

2012-05-09     연지민 기자
고영민

대낮, 골방에 쳐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 …(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 …(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혀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어느 한유한 골목길 풍경이 무심코 문지방을 넘어옵니다. 빼뚤한 골목처럼 계란장사의 혀 꼬부라진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와 나른한 오후에 파문을 그립니다. 별스럽지 않은, 아주 흔한 골목 풍경에서 시인은 거친 삶의 운율을 터득합니다. 말과 말, 말과 말의 침묵 사이에 깔린 곡진한 삶의 소리들. 서편제·동편제와 다를게 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