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민주주의 폭거
충청논단
2011-11-23 오창근 <칼럼니스트>
다수 이익과 국가 미래에 대한 결단이라고 주장하지만, FTA 체결을 통해 피해를 입는 쪽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 미국에서 비준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물리적 힘을 동원해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며 폭거라고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다수당의 횡포보다는 최루탄을 던지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언론은 그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본질은 국민적 저항이 아직도 있고 협상을 통한 독소조항 제거라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함에도 힘으로 통과시킨 여당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국회 몸싸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양비론을 통해 정치 혐오증만 가중시키고 있다.
내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하면 현재 2.5%의 관세를 내고 있는 자동차 사업은 2015년부터 관세가 없어져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지만, 40% 가까이 싼 가격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를 비롯한 축산농가와 과수농가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 뻔하다. 특히 한미 FTA 체결로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특허권이 강화되면, 국내 제약사들이 값싼 복제약을 만들기 어려워져 국내 소비자들은 높은 약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과 FTA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 확대, 교역 확대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마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이 100% 손해다. 한국과 같은 뒤떨어진 나라가 차세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FTA를 하면 이미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만 혜택을 보지 미국, EU,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제약 산업, 첨단 기계, 정밀 부품 등과 같은 산업에서 여전히 경쟁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과 FTA를 하면 이렇게 차세대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산업은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의 물타기식 언행은 FTA 비준동의안을 저지하는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앞으로 정국은 급속도로 냉각될 것이고 많은 민생 현안 법안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여당은 날치기 처리라는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야당은 강행처리를 막지 못한 집행부에 대한 책임논란이 대두될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민의를 받든다는 정치인의 립서비스가 현실이 될 수 없고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냉소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