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사태의 교훈

데스크의 주장

2011-05-23     이재경 부국장<천안>
이재경 부국장<천안>

지방의 한 조그만 자동차 부품업체 때문에 완성차 업계가 난리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본사를 둔 유성기업주식회사. 1959년 서울 오류동에서 닻을 올린 이 회사는 지난해 연 매출이 2300억원인 평범한 중견 부품업체다.

이 회사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TV에서 아산공장의 쟁의현장에 사용자 측이 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이 돌진, 노조원들을 치고 달아나는 게 방영되면서부터다(이전까지 이 회사의 노사분규는 사실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경제뉴스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했다. 유성기업의 아산, 영동 공장의 파업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는 뉴스였다.

이 회사는 국내 완성차업계에 공급되는 피스톤 링의 80%를 독점하고 있다. 1개당 1351원짜린데 자동차 1대당 3개가 들어간다. 이게 없으면 엔진을 조립할 수 없다. 엔진의 피스톤과 실린더 내벽의 기밀(氣密)을 유지하고 실린더 벽의 윤활유를 긁어내려 윤활유가 연소실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피스톤 링을 생산하는 업체는 단 두 곳밖에 없다. 이 회사 말고 대한이연이란 회사가 국내 소모량의 나머지 20%를 생산하고 있다. 유성기업이 독과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됐다. 독과점 업체가 부품을 안 주니 자동차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 기아차 카니발은 지난 20일부터 생산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고, 현대차는 22일부터 싼타페, 투싼ix, 베라크루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차종이 2~4일치 재고만을 확보했을 뿐이다.

1개당 1000원대의 조그만 부품의 공급 차질이 연간 생산대수 440만대, 연 매출 81조원 규모의 한국 자동차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노사분규를 탓하기 전에 무비유환을 자초한 국내 완성차 업계를 질타하고 싶다. 리스크 관리를 목숨처럼 중하게 여겨야 할 업체들이 기본적인 준비에 소홀했다.

부품 조달처 다변화나 제2, 제3의 부품 업체 육성에 소홀했다. 여기에다 재고물량을 전혀 확보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제일 큰 문제였다.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품업체에 실시간 주문 방식으로 피스톤 링을 조달했다.

자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데 이게 결국 발목을 잡았다. 어찌보면 조그만 탐욕이 큰 재화의 손실을 부른 셈이다.

그러면서 반성은 전혀 않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로 이뤄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23일까지도 노조의 불법 파업이 원인이라며 성명을 내고 공권력 투입만 바라고 있다. 실제 지난 주말 현대기아차측은 "이번 사태는 유성기업 노조외에 외부 세력(민노총)이 개입한 것이 문제"라는 입장만 밝혔을 뿐 리스크 관리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업계가 뒤늦게 사후 약방문이다. 현대기아차가 23일 부품 공급선 집중화 해결을 위해 다변화 전략에 나선다고 발표했으며, 한국GM도 글로벌GM의 협력업체 이용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걸로는 미흡하다. 함께 상생 발전해 나가야 할 글로벌 부품 업체의 육성이 절실하다. 협력사들을 위한 R&D 투자 방식의 초과이익공유제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국내 조달라인이 불안하니까 국외에서 부품을 사서 쓰겠다는 한심한 사고, 연간 3~4조원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부품 재고율 제로베이스를 만들려는 탐욕은 물론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