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귤북지(南橘北枳)
송재용의 기업채근담
2010-11-10 충청타임즈
남귤북지(南橘北枳)는 남쪽 땅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북쪽 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환경이나 문화가 달라지면 사람의 언행이나 사고방식도 바뀐다는 뜻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제(齊)나라에 일세를 풍미한 안영이라는 재상이 살았다. 어느 날 초(超)나라 왕이 안영을 초대했다. 안영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제나라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싶기도 했다.
초나라 왕은 인사를 나눈 다음 안영의 외모를 갖고 시비를 걸었다.
"제나라에는 쓸 만한 인물이 없는 모양이지요?"
천만에요. 인물이 넘쳐나 누구를 대신 자리에 앉힐까 임금이 고민하실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과 같은 사신을 보냈는지 모르겠소"
초 왕은 키가 5척(150cm 내외)도 안 되는 안영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초 왕에게 태연하게 응수했다.
저희 제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꼭 지키는 불문율이 하나 있사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신이 가는 나라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골라 보내지요. 작은 나라는 키가 작은 사신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키가 큰 사신을 보냅니다. 물론 저는 대신들 중에서 키가 가장 작아 초나라에 뽑혀 왔습니다."
안영의 정곡을 찌르는 답변에 그만 초 왕의 입이 떡 벌어졌다. 초 왕은 안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거리를 찾기 위해 대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저자거리를 지나는데 못 보던 옷차림을 한 사내가 오랏줄에 손이 묶인 채 질질 끌려가는 게 아닌가? 초 왕은 포졸을 급히 불러 세웠다.
여봐라! 무슨 죄를 지었기에 사람을 포박해서 개 끌듯 끌고 가느냐?"
전하, 이놈은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면서 물건을 마구 훔친 절도죄인입니다."
그 죄인의 옷을 보니 초나라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맞느냐"
예, 제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럼 그렇지!"
초 왕은 이번에는 안영의 기를 꺾을 좋은 거리가 생겨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초 왕은 "제나라에는 남의 재물을 함부로 훔치는 도둑놈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지요?" 하고 안영에게 무안을 주었다. 그러자 안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훈계하듯이 초 왕에게 말했다.
보아 하니 초 나라는 왕실에서부터 저자 사람들까지 살찐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만 열중할 뿐 도통 책을 안 읽는 거 같아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걱정은 접어두시오!"
초 왕은 기분이 나쁜지 안영에게 쏘아붙였다.
전하께서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도 모르시는 거 같아 감히 드린 말씀입니다."
흠, 흠..." 초 왕은 답변이 궁해 헛기침만 했다.
이 말은 남쪽 땅(제나라)에서 자란 귤나무를 토질이 나쁜 북쪽 땅(초나라)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건 당연하지요!"
초 왕은 얼떨결에 안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전하, 저 사람도 제나라에서 살 때는 착했으나 여기 와서 초나라의 나쁜 풍토에 물들어 도둑질을 배운 게 틀림없습니다."
안영의 반격에 초 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초 왕은 안영과 더 이상 대적해 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 같아 그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소문대로 경의 재기 넘치는 언변과 지략(智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소이다. 우리 그만 하고 대궐에 돌아가 대취하도록 술이나 마십시다."
그리하여 초 왕은 안영을 만나본 뒤로 제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