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앞에서 울다

타임즈 포럼

2010-02-18     충청타임즈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정리한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돌덩이처럼 말라붙은 떡첨이 눈에 띈다. 작년 설에 어머니가 싸 주신 떡첨이다.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유물이다. 아이들 간식으로 주라고 길게 자른 가래떡도 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만져보다 냉동실 문을 닫고 돌아선다. 뿌옇게 나오는 한기에 코끝이 시리다.

버스에 짐을 싣고 객지에 사는 아들을 위해 한 보따리 반찬을 장만해오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머릿속을 파고든다. '고들빼기', '깻잎 무침', '멸치조림' 밑반찬 한가득 늘어놓으며 "밥 굶지 마라!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사람이 곯는다." 결혼 후에도 인사를 마치고 출발하려면 어김없이 불러 세운다. "아 참, 내가 고추장은 챙겼니 조금만 기다려 봐라!" 장독대로 달려가셔 이것저것을 살뜰히 담아 자동차에 실어 넣는다. 괜찮다는 며느리 말에 "없으면 다 사서 먹어야 하니 괜한 돈 들이지 말고 가져가라." 하시며 작은 몸으로 종종걸음이시다.

돈만 주면 다 살 수 있다. 위생적이고 더 다양한 음식이 잘 진열되어 있어 언제나 값만 치르면 밥상에 오를 수 있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버스를 갈아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음식의 상표도 '어머니 손맛', '시골', '고향' 등으로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투박하게 보였던 어머니의 음식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의 종류는 세상의 어머니 수와 동일하다.'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가난했던 시절 푸성귀 하나도 어머니의 손끝을 거치면 손맛으로 거듭나곤 했다. 김치부터 밑반찬 하나까지 집집이 다 그 맛이 달랐다.

어쩌면 다른 음식을 접할 기회가 적어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에 익숙해져 있고, 마트에 가 사오는 재료와 양념들이 비슷해 요즘 아이들이 자기 어머니의 손맛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작년 설 쇠고 다음날 쓰러져 석 달을 의식불명으로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이 묻어 있는 떡첨이 몇 년을 저 냉장고에 있을 줄 모른다.

큰며느리로 명절 때마다 모든 음식을 장만하시던 부지런함이 형수님 손으로 옮겨 왔다. 당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던 음식이 이제는 어머니 지방(紙榜) 앞에 놓인다. 살아생전 먼저 간 막내 동서 제사까지 챙기던 속 깊은 어머니가 며느리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계신다. 명절 때 오지도 않는 아랫동서를 위해 전과 송편을 싸서 작은아버지 손에 들려주시던 내 어머니가 제사상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보고 계신다.

명절 쇠고 돌아오면 그렇게 한 보따리 가득 싸 주시고도 깜빡 잊고 못 보낸 것이 있다고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던 어머니의 부재는 큰 빈자리로 자식의 맘을 아프게 한다. 참기름이 떨어졌다고, 김치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명절이 되었다.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머니에게는 당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일처럼 주섬주섬 챙겨 넣으며 상하기 전에 꼭 해 먹고 이것은 냉장고에 저것은 냉동실에 넣으라고 주문하시는 싫지 않은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펼쳐진 음식들을 정리하는 아내의 손이 바쁘다. 냉장고를 청소하며 오래된 음식을 버리던 아내도 어머니의 손길이 묻은 떡첨을 들고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먹을 순 없지만 버려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갈등한 탓이다. 돌처럼 굳은 떡첨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다. 그것을 녹여낼 자신이 없어 목이 멘 못난 아들의 가슴에 그렇게 어머니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