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세상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08 2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청주시 노인종합복지관>

교회 라틴어격언 중에 'Senex est thesaurus ecclesiae, 노인은 교회의 보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격언의 뜻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활동적으로 교회 일을 해주는 신자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묵주를 손에 들고 평일에도 빠지지 않고 성당의 앞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기도하고 계시는 분들은 구부정한 어깨와 백발, 온갖 세파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 느린 행동의 어르신들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벨기에 감독이 만든 영화'제8요일'은 성공한 명강사의 바쁘고 기계적이고 고립된 생활에 정신지체장애인이 끼어들면서 과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여기서 지적장애인은 인간이 잃어버린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관계와 사랑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혹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신뢰쯤은 저버려도 되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계산하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사랑에 바탕이 된 가족, 친구, 동료, 타인 등과의 관계는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관계는 그것이 설령 부모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버리거나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죄 없는 사람 단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신 창세기 말씀이 생각납니다.

흔히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며 말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건재한 것은 죄 없는 사람 10명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것은 구부정한 어깨와 백발, 온갖 세파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 느린 행동의 우리 부모님, 노인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위한 눈물의 탄식과 열망이 있기에 자식들이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바쁘고 상처투성이로 내몰리는 사회생활이지만 느리게 걷는 노인들의 걸음이 있기에 주춤거리고 서서 생각도 해봅니다. 실패 앞에서 토닥토닥 위로하는 어르신들의 손길이 있기에 좌충우돌하는 이 사회의 문제들이 다시 길을 찾아냅니다.

19세기에 독일의 정신의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처음으로 인간정신을 분석해냈습니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러나는 움직임과 결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패스트푸드의 빠른 음식문화가 미화되고 찬양되다가 이제는 전 세계가 웰빙 열풍에 따라서 슬로우 푸드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좀 더 확대해서 해석을 해보면 빠르고 기계적인 청년문화가 퇴보하고 느리고 인간적인 속도의 노인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간파했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성장위주, 개발 중심의 사회가 이제는 생명과 인간과 자연이 화두가 되고, 새삼 노인들의 문화에서 많은 가치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이 세상을 받치는 힘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