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국 이사관과 충북의 공직 인프라
박경국 이사관과 충북의 공직 인프라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8.03.2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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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주장
한 인 섭 <사회체육부장>

청와대 대통령실 전출이 확정된 박경국 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50)에 대한 인사 소식을 여느 고위직 공무원 인사와 다르게 받아들인 이들이 꽤 있었을 듯 싶다.

고위직 인사 때마다 그의 주변에는 '왜 중앙부처로 진출하지 않느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가면 언제쯤이냐'는 식의 말들이 꼬리표처럼 늘 따라 붙었다. 충북 공직사회 안팎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던 것은 우선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일정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우물안 개구리' 처럼 충북도만 고집하는 그의 보직관리 방식에 대한 아쉬움과 질타성 시각도 있었을 것이다.

'토박이 공무원'인 그의 모습을 충북 출신 공무원이나 지역 인물들이 지닌 성향의 단면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청와대 진출은 누가 봐도 '적절할 때 잘 풀렸다'고 덕담할 만 한 일이다.

그는 행정고시(24회)로 공직을 시작해 내무부 근무후 충북도에 내려와 서른여섯이었던 지난 94년 관선 단양군수를 지내는 등 예전이나 지금이나 잘나가는 공무원이다. 지난 96년 무렵 주병덕 지사 시절에는 고참 공무원들이 여럿 포진해 있던 상황에서 내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주병덕 지사는 젊고 유능했던 그를 내무행정의 사령탑으로 발탁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선제 행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행정이 '수요'를 앞서가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던 것 같다. 그는 공직사회 안팎에서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처신이 깨끗하다. 하지만 일찌감치 내무국장을 지낸 탓에 후속 보직은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10여년 동안은 '충북도 행정직제'에 나와 있는 웬만한 국장직은 한번씩 다 돌았을 정도다. 2006년 4월 이사관으로 승진해 기획관리실장을 지냈지만 직업을 '국장'이라 칭하는 게 어울릴 정도였던 그였다.

2007월 3월 충북도 고위직과 청주시 부시장 인사의 변수로 등장했던 그는 결국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수 파견행을 택했으나 인사권자인 정우택 지사나 남상우 시장, 당사자가 막판까지 조율을 거듭해야 할 정도로 고민거리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의 연수파견 복귀(24일)를 앞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인사구도와 '중앙부처 카드'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소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일 만한 이번 인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양'이 됐다. 청와대 근무 이후 행정부지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입장이 된 박 전 실장이나, 중앙부처 인물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 충북의 사정을 고려하면 다 잘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충북도청 고참 부이사관 1명이 조기에 승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박 전 실장의 청와대(중앙부처) 진출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좋게 보면 몸집을 키울 적절한 시점을 택했다는 시각도 가능하다.

박 전 실장의 이번 인사를 굳이 거론하는 것은 충북의 중앙부처 인맥 인프라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왜 중앙부처로 진출하지 않느냐'며 등 떠미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은 충북의 인맥이 좀더 두터워져야 한다는 바람이었을 것 같다.

이런 논리를 뒤집어 보면 당겨 줄만한 맨파워가 없어 '중앙부처행'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했다. 그래서 '괜히 올라갔다 밀릴까봐 저런다'는 말이 뒤따르기도 했다.

박 전 실장의 거취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근본 원인은 장차관 인사 때 마다 늘 등장하는 '충북 소외론'과 '인물 부재론'에서 찾아야 한다. 새삼 충북의 인적 인프라가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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