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公薦)이 뭐길래"
"공천(公薦)이 뭐길래"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8.03.21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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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 <정치부장>

4·9총선 지역구 공천 작업이 거의 마무리됐다. 다음주 25, 26일 후보자 등록을 거쳐 오는 27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그동안 충북 8개 선거구에서는 '공천전쟁'이 한바탕 치러졌다. 가장 중심에 있었던 곳이 충북도청 브리핑룸이다. 짧은기간 인지도와 지지도를 올려야 하는 후보들이 기댈 곳은 매스컴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 내밀기 경쟁으로 번졌고 회견장은 매일같이 후보와 지지자들로 만원이었다.

이번주는 공천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회견이 많았다. 1주일 차이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후보자가 있는가 하면 낙천에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울분을 토하는 후보자들도 많았다. 출사표를 내던질 때와 불과 한달 가량 차이로 이들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공천자나 낙천자 모두 생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맛보았다고 한다.

특히 경쟁이 치열했던 한나라당에 사연이 많았다.

청주 흥덕을 낙천자인 박환규 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은 지난 19일 공천수용 회견에서 눈물까지 보였다. 그 눈물은 배신과 허탈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게 3월은 잔인한 배신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육사를 나오고 씩씩하게 공무원생활도 한 사람이다. 정치가 무엇이고, 공천장이 무엇인지 계속해 뇌리에 남는다.

서규용 전 차관은 부인을 대동해 카메라 앞에 인사까지 시켰다. 공천탈락후 내내 잠도 못자고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부인을 너무 고생시켜 죄스럽다고 했다. 농업직 최초로 농림부차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충북 출신의 대표적 공직자이다. 누가 이런 사람들의 가슴에 멍을 들게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청주 흥덕갑의 김병일 후보는 더한 경우다. 불과 1주일만에 공천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공천번복 사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평가는 시간이 지난후에 말하겠다고 한다. 행시 합격후 서울시에서 공직생활을 한 그의 40일 동안의 귀향활동은 결국 낙심으로 매듭져졌다. 이명박 정권에서 충북 출신중 가장 출세길이 보장됐던 인물이었다. 공천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한사람만 살아남는 아주 냉혹한 게임이 가져다 준 결과다. 승자와 패자의 희비는 크게 엇갈리고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하는 것이 이번 공천싸움이었던 것이다.

여러사람이 합의해 공정하고 정당하게 추천한다는 의미의 공천(公薦). 그러나 원칙과 기준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파벌정치 부활은 정당민주주의에 후진기어를 넣어버린 것이라는 아주 냉엄한 비판까지 가해지고 있다. 끝내 '친박연대'라는 정치세력이 탄생하는 등 후유증은 걷잡을 수 없다. 결국 다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던 총선판을 스스로 원점으로 돌려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도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은 공천"이라며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비판할 정도인가.

통합민주당도 개혁 공천이라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구태(舊態) 공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천 확정자 146명중 열린우리당 출신이 무려 129명에 이른 것부터 그렇다. '노무현 실정(失政)'에 책임을 공유해야 할 386출신 구 실세 대부분이 공천을 받아 '탄돌이'들이 다시 나서게 됐다.

가장 압권은 개혁공천 대상인 이용희 국회 부의장의 자유선진당 입당이다. 50년 민주세력의 대표라고 자부해 오던 그는 비열한 공천 앞에 '보수'로 투항을 했다. 그러면서 원래 자신은 보수였다고 얼버무렸다. 이런 촌극(寸劇)도 드물 것이다. 공천을 놓고 긴박하게 돌아간 3월 세쨋주의 단상(斷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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