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허물기
벽 허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1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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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몇년 전부터 자치 단체가 담장 허물기를 도시의 주요 환경개선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높은 담장 끝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혀있거나, 뾰족한 철조망이 둘둘 말려있던 담장은 이제 눈에 띄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변화는 담장 허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절도 경계를 허물기로 했는지 겨울이 끝난 3월에 폭설을 쏟아낸다.

나이의 벽도 허물어졌다. 공자가 15세에는 학문에 뜻을 세우고, 30세면 모든 기초를 세우고, 40세에는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50세에는 하늘의 뜻을 알고, 60세에는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사려나 판단의 성숙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일 나이라고 했다. 공자에 의하면 나이 60세는 인간 사회에서 최고 어른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나이 60세면 시골에서 청년 회장한다는 것을 공자가 알까.

노인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바로 이 대목에서 가장 큰 모순이 발견되었다. 유교적 사고나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보니, 나이 60세는 인생에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말년이 되었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 팽배해 있다. 사회 전반의 제도적 현실적 구조도 60세면 모든 게 종료 시점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균 수명이 공자 시대보다 10년, 20년이 연장된 현대에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것은 고대의 철학인 것이다. 노년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혼란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우 크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공적활동이 주어지지 않는 나이 60세의 세대들은 지금 스스로 사회적인 벽을 허물어내고 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변화를 거부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지만, 실상 노년 세대를 들여다보면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당당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와 유연성으로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는다.

오히려 고정관념으로 노년세대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다. 불가침의 높은 성벽을 우리들이 쌓아놓는 것이다. 노인은 '사회적약자' 라는 개념이 얼핏 보면 배려가 있는 인식 같지만 현실의 변화를 재고하고 본다면 이 용어는 관리자 측면의 효용성만 담고 있는 용어이다. 사회적 약자란 사회의 주도세력이 아니라 주변인이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노년 세대를 주변인으로 밀어내놓고 그냥 조용히 물러나 있어줄 것을 바란다.

이 참에 우리의 강고한 인식 하나를 반성해 본다면 '사회적약자' 라는 용어에 담겨 있는 자기기만이다. 노년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주여성, 새터민, 편부모가정, 장애인, 소수자들을 아우르며 남발하는 언어의 폭력성이다. 다수자의 문화나 특성이 보편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소수자는 '사회적약자'로 분류되어 시혜의 대상이면서 사실은 주변인, 아웃사이더로 분류시켜 비주류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담장을 허물어낸 자리에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과 예쁜 화분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주변이 환해진 느낌이다. 암울하고 경직되었던 과거의 문화를 털어내고 경계를 허물어가는 다양한 시도들은 자각 없이 관성에만 따랐던 우리 생각의 틀을 허무는 일부터해야 한다. 우선, 세상이 '할아버지', '할머니'라 칭하는 이 분들도 '한 남자'요, '한 여자'라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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