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종교의 길은….
무릇 종교의 길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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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삶터교회 담임목사>

봄입니다.

철없다는 말과 철 들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난 뒤부터 철부지로 살지 않으려고 철 따라 계절을 몸에 모시길 어언 스물 두어 계절이 왔다 갔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봄을 모시다가 마침내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열리기도 하고 피어오르기도 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을부터 몸을 비우던 자연은 어느새 죽음 같은 잠에 빠진 겨울로 깊어지더니 마침내 언 땅이 녹고, 바람이 이러저리 불면서 산과 들, 그리고 물에서 골고루 봄이 열리고, 온갖 새싹이 돋아나면서 그 기운이 또한 동물들의 몸을 근질거리게 하면서 온 누리에 활기가 가득해졌습니다.

해는 날마다 길어지고, 때때로 매운 바람이 몰아치기도 하지만 살갗에 쏟아지는 햇살의 따사로움은 그 어느 연인이 있어 이처럼 골고루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을까 싶어 두 눈 가늘게 뜨고 온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 젖힙니다.

자연은 그 속성상 어찌 보면 어머니이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하느님이기도 하며, 개인적인 자리에서 보면 가없이 다정다감한 연인이기도 합니다.

종교의 자리에서 이 자연을 말한다면 틀림없는 하느님의 기운, 그래서 이 봄에 하느님의 마음은 무엇이고, 종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제 몸을 비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살찌게 하는 자연, 그 죽음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이 살아나는 자연의 모습이 고대인들의 종교심을 일깨웠을 것임을 넉넉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좀 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은, 각각의 종교 창시자들의 삶꼴이 제가 죽어 남을 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게 있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종교란 제 몸을 비워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까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종교가 제 몸집을 불리는 데 관심을 쏟고, 그 종교의 구성원들의 삶이 메말라가거나 인성이 일그러진다면 이미 그 종교란 종교가 아닌 사기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데까지 생각은 내닫습니다.

봄날의 따뜻한 해가 진 자리, 낮에는 포근한 봄기운이 가득하지만 밤은 아직도 남은 겨울이 실감나는 것이 이 즈음 날씨의 특징입니다. 겨울을 느끼게 하는 해 지는 저녁, 창 밖을 보니 하나 둘씩 켜지는 네온 십자가들이 선명해집니다.

모든 신호까지도 언어로 해석하기를 즐기는 내게 저 불이 켜지는 모습이 사람을 살리고 살찌우겠다는 일인지, 아니면 종교 자체가 살고 몸집을 불리자는 것인지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없어 마음이 시계추처럼 춤을 춥니다.

봄의 언어 안에서 종교의 종교됨을 묻는 기도를 그리는 이들이 어디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 내 눈길이 아직도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하는데, 그러기를 멈추고 다시 눈길 거두어 나 자신을 살핍니다.

내 안에 얼마만큼 봄이 들어오고 있는지를, 이 봄이 온 누리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미칠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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