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여행을 떠나자
성찰의 여행을 떠나자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3.05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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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200시간 봉사는 성찰의 여행'.

지난 3일자 한 중앙 일간지에 난 기사의 제목이다.

제목만 얼핏 봐서는 기사의 내용이 봉사활동을 통해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어떤 뜻깊은 '인생'을 다룬 것으로 추측됐다.

그러나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의 주인공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그는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한 게 사단이 돼 '보복 폭행'이란 죄를 짓고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지난 겨우내 꽃동네 등지를 돌며 생전 처음으로 밑바닥 삶을 체험하며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일 법무부에 제출한 소감문-사실상 반성문-에서 '사회봉사명령 이행은 제 자신을 버리고 마음을 낮추어 더욱 성숙된 자아를 찾아가는 성찰의 여행이었다'고 고백했다. '제 삶을 바꿔놓은 기회가 됐다'고도 했다.

올해 56세의 김승연 회장, 20대의 젊은 나이에 재벌그룹의 후계자가 돼 거침없이 상류사회에서만 '놀았던' 그가 비로소 진정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 것이다. 스스로 '살피고 또 살핀다'는 성찰(省察)이란 말을 반성문에 써가며 '성찰의 여행'을 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 기사가 나기 하루 전, 2일 밤 방영된 MBC 채널의 시사매거진 2580.

'대한민국 장관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내레이션이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다음날 첫 국무회의를 앞둔 이명박정부의 장관들을 신랄하게 두들겼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받은 충격은 꽤나 컸다. 신문지상에서, 방송에서 이미 숱하게 보도된 장관들의 투기의혹을 2580은 거침없이 실재(實在)한 투기였다고 입증했다.

누구보다 곧게 살아왔어야 할 법무부장관은 물론 국토해양부에서부터 지식경제부, 노동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의 장관(또는 내정자)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 사례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논문표절, 병역특혜의혹, 이중국적 등 어느 하나 봐 줄래야 봐 줄 수 없는 일들까지.

충격파는 컸다. 2580의 시청자 의견란엔 평소보다 10배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 개탄의 글을 올렸으며 방송사와 PD를 격려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그 장관들은 다음날 아침 8시 대통령 주재의 첫 국무회의에 얼굴을 내비쳤다. 여론에서 등을 돌린 인물들이 실용이란 화두에 목을 맨 대통령의 용인으로 결국 국정 각 분야의 책임자가 돼 장관으로서의 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2580을 끝으로 더 이상 장관들의 잘못된 과거지사에 대해 문제삼을 언론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요즘 언론들은 낙마가 유력한 김성이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를 빼고는 더 이상 문제를 재론하지않고 있다. 맞을 만큼 맞았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지않겠느냐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읍소가 먹힌 듯 하다.

그럼 국민들도 그들에게 면죄부를 줘야 하는가. 대통령이 다 묵인하고 일을 시키겠다는 데, 그럼 어쩔 수 없이 그런 결함있는 장관들을 용서해야하는가.

아니다. 그냥 끝날 일만은 아니다.

청문회에서, 언론을 통해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으로 끝내서는 안될 일이다.

장관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김승연 회장 처럼 성찰의 여행을 떠나라.

공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한가로운 날이라면 골프채를 잡지말고 꽃동네로, 태안으로 떠나라. 한달에 두번, 한번이라도 좋다. 정말 숙연하게, 동시대에 살면서, 매일 땀흘려 일하면서도 못배우고 끈이 없다는 이유로 부를 쌓지못해 죽을 때까지 내집 한칸 마련하지 못해 허리를 졸라매야하는 민초들의 삶과 가까와져라. 이제 진짜 정승이 됐으니, ×같이 벌었던 돈을 정승처럼 쓰자. 생전 해보지 못했던 기부도 해보고. 그런 연후라면 그때가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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