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과 섬김
하심과 섬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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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전 철 호 교무처장 <충북불교대학>

섬김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학군장교 임관식에서 단상의 인원을 최소화하고 행사의 주역이라는 개념으로 임관 당사자인 학군장교들과 가족들이 의자에 앉도록 한 다음 임관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손님인 줄 알게 했던 것 같다. 몇 시간씩 부동자세로 임관식 행사를 치렀던 시절에 비하면 참으로 파격적인 의전절차이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표방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특히 선거철만 다가오면 누구의 전매특허랄 것도 없이 너도 나도 그런 말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정작 당선되고 나면 섬김인지 군림인지 모를 행태로 우리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불가에서는 하심이라는 용어를 말을 자주 사용한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다. 언젠가 TV에서 108배의 신비에 대해 방영되고 나서 여기저기서 절을 108배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어떤 이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이는 다이어트 겸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절을 하는 가장 기본은 자기의 머리를 바닥에 닿도록 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하심하는 마음이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없이는 108배의 효력을 근본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절은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꺾고 자신을 돌아보며 참회하는 수행의 일종이다.

절을 하면 10가지 공덕이 있다고 가르친다. 첫째는 뛰어난 몸을 받게 되고, 둘째는 말을 하면 남들이 믿어주고, 셋째는 항상 두려움이 없어지고, 넷째는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주며, 다섯째는 훌륭한 위의를 갖추게 되며, 여섯째는 많은 사람들이 친근함을 느끼고 다가오며, 일곱째는 천신들이 아껴주고 공경하며, 여덟째는 큰 복덕을 갖추게 되며, 아홉째는 다음 생에 극락에 태어나며, 열째는 마침내 번뇌를 여의게 된다고 한다.

우리 역사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삼전도의 수치는 인조대왕이 청나라 장수에게 삼배구고두를 하면서 항복을 하는 것이었다.

국왕이 적장에게 절을 3번하면서 절 한 번에 머리를 땅에 부딪치는 행동을 3번씩, 9번 머리를 땅에 닿게 함으로서 조선 전체가 청나라에 항복함을 천명한 것이다. 극히 자기를 낮추는 것이며 강요에 의한 절이었다.

성철스님은 친견하러 오는 사람들이 먼저 3000배를 해야만 만나주셨다.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는 절을 10시간 가까이 하고나면 교만한 마음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작은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아니셨을까.

섬김은 '신이나 윗사람을 잘 모시어 받든다'는 뜻과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힘이나 정성을 기울이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하심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나를 낮추는 마음이다. 둘은 일맥상통하면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적 영향으로 달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보면 교만함을 버리고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예우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식과 허세가 판을 치고, 혹시 나를 낮추면 상대가 나를 업신여기거나 짓밟지는 않을까해 교만과 거드름을 피우기도 하는 세상이다. 또한 순간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서 마음은 낮추지도 않으면서 몸은 낮춘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하심과 섬김을 구호로만 외치고 교만과 군림의 마음이 가득하지는 않은지…. 우리는 구호와 몸짓만 요란한 하심과 섬김보다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심과 섬김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참된 하심이 없으면 올바른 섬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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