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코리아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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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모 기자
  • 승인 2008.02.14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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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 병 모 부장 <진천.증평>

South Korean icon burns.

"대한민국의 아이콘이 타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에 스러져간 다음날 아침. 미국의 조간신문들은 화마에 휩싸인 숭례문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맞다. 숭례문은 우리 민족의 아이콘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600년 수명을 이어온 민족의 자존심 아닌가. 이 숭례문이 향년을 600년으로 끝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슬픔을 넘어 분노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이 문화재 방화 상습범이었다니 기가막히다. 범인은 2년 전에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다가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반성은 고사하고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국보에 불을 질렀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열차를 겨냥하려고도 했었다는 대목에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노인의 개인적 불만이 온 국민의 정신적 지주를 일순간에 꺾어버린 셈이다.

경찰이 어제 영장을 신청하면서 밝힌 내용을 보면, 범인 채씨의 범행동기가 재건축 과정에서 받은 토지보상금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데 있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또 이 사건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 등 뒷얘기를 듣자니 가슴은 더 답답해진다.

이 사건 1년 전에 22살 대학생이 노숙자들에 의한 숭례문 방화가능성을 주장하는 글을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겼다는 것 아닌가. 귀중한 문화유산이 줄지어 소실돼 왔는데도 대책다운 대책을 마련하기는 커녕 그 경고음까지 제대로 듣지 않아온 정부와 정치인들은 서로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앞다퉈 노무현 정부의 무능을 공격하고 나섰고, 예비야당쪽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숭례문을 개방한 전시행정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숭례문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멀리서 관람하는게 좋다. 사람 접근을 허용할 경우 낙서나 훼손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던 문화재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 참담한 결과를 빚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파트에도 경비원을 두는데 국보에는 왜 경비원을 두지 않는 것이냐"는 역공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성금' 발언도 신중치 못했다. 발언의 취지를 이해못하는건 아니지만 성금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 먼저 말을 꺼내 모금운동이 전개된다면 그 순간 성금이 아니라 강제모금이 되는것 아닌가.

"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숭례문이 소실된 것은 길조로 봐야 한다. 오히려 새 정부의 번창을 위한 희생으로 봐야 한다"는 인터넷상의 주장에는 화가 치밀 정도다.

문화재청장도 사표를 제출하는 걸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 해선 안된다.

2005년 4월 천년 고찰 낙산사 화재사건,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 방화사건과 화성 서장대 전소사건 등이 잇따랐지만 문화재청이나 관리책임을 진 지자체, 정부는 수수방관해왔다.

숭례문이 복원되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숭례문이 복원되기도 전에 우리 정부,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오늘의 아픔을 까맣게 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모두 정신을 차리자.

숭례문이 어떤 모습으로 재건되는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다른 수많은 문화재들이 어떤 보호를 받게 되는지 똑똑히 지켜보자.

적어도 외신 기사 제목이 South Korean icon restored.(한국의 아이콘 재건되다)로 바뀔 때까지만이라도 오늘의 아픔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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