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희망歌'
재래시장 '희망歌'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8.02.0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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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인 섭 <사회체육부장>

4일 오후 2시 청주시청 앞 마당에는 대형버스 3대가 탑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버스 좌석을 메운 이들은 청주시 새마을부녀회와 여성단체협의회 회원 170여명. 설 명절을 앞두고 제수용품과 설빔을 장만하러 모인 이들은 청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육거리시장과 북부시장, 가경터미널시장으로 향했다.

시 공무원들과 이날 모인 단체회원들은 수년째 재래시장 장보기 캠페인에 참여한다. 이 운동은 이미 주요 정책이 됐다. 지난 1일부터는 공무원, 자원봉사대원, 직능단체원 등 7300여명이 재래시장을 찾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발행한 재래시장 상품권 할인판매도 병행해 선물용 상품까지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마트의 파상 공세에 밀려 고사위기에 처한 재래시장 살리기 프로그램이다.

사람을 모으고 조를 짜 시장으로 보내는 방식의 캠페인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어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재래'로 상징되는 우리 것과 대형마트로 상징되는 '외래'라는 가치와의 큰 싸움이 내재해 있어 사람을 모이게 하고, 모을 수 있는 명분 역시 충분하다.

캠페인과 같은 인위적 힘이 가해진다 해도 재래시장이나 상인들의 형편이 곧바로 넉넉해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수십억원씩 예산을 들여 주차장이다 아케이드다 시설을 현대화하고 있지만 효과를 제대로 거두는 곳은 많지 않다. 여전히 살아 남는 것 자체가 재래시장의 과제다.

이런 측면에서 육거리시장의 선전은 눈여겨 볼 만하다. 면적 3만평, 점포수 1500여개, 종사원수 3만5000여명, 하루평균 매출액 7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는 육거리시장은 90년대 중반 이후 여느 시장처럼 '죽겠다'는 소리가 났던 곳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시설 현대화 사업과 상인 친절서비스 교육, 재래시장 상품권 발행 등 지자체와 연계한 활성화 프로그램이 집중 진행됐다. 공무원들과 지역의 기업체를 중심으로 재래시장 상품권 사용 캠페인이 추진돼 지난해에만 25억원 어치를 판매했다.

지난해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거리시장을 방문해 '성공한 재래시장'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12월에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한국유통대상 복합상점가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도 이뤘다.

이런 탓인지 시장 앞에 설치된 '청주 10선'이라는 광고물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장보기 캠페인'에 참여했던 이들이나 시장을 찾는 일반 시민들은 다소 더디지만 세련미를 갖춰가는 모습과 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바람'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

육거리시장과 청주시 정책은 전국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육거리 시장의 선전이 청주시내 소규모 재래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도 큰 성과로 꼽힌다. 13개 소규모 시장 가운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2∼3곳을 제외한 나머지 재래시장들은 나름의 경영마케팅을 구사해 육거리시장 정도는 아니지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평가된다.

선거철 마다 유권자 성향을 표현하는 용어로 종종 등장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재래시장에서도 나타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소비심리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재래시장으로 향한다는 인식을 갖게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시민들은 여전히 "가고는 싶은데 불편해서"라는 선입관을 버리지 못한다. 재래시장이 대형 할인마트가 제공하는 편의성과 정돈된 맛을 따라 잡기는 아직 요원하다. 그렇더라도 이번 명절은 사람 냄새, 풍성함을 쫓는 발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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