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정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정
  • 이수홍 기자
  • 승인 2008.01.21 2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 수 홍 부장 <서산.태안>

태안 만리포 앞바다에서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20일로 50일째가 됐다.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록될 만큼 대 재앙이다.

그동안 방재본부와 전국에서 몰려든 10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유출된 1만5000의 원유가 만들어낸 해안가 기름덩어리 대부분을 걷어냈다. 말 그대로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그런데도 조류를 타고 타르는 전북과 전남, 제주도 입구 추자도 해안가까지 떠밀려 내려갔다.

정부는 사고 후 바로 태안군을 비롯해 서산시, 당진군, 홍성군, 보령시, 서천군 등 충남 6개 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 국가책임의 근거를 마련한데 이어 지난 18일엔 역시 타르가 덮친 남·서해안 영광, 무안, 신안, 진도군 등 4개지역을 재난지역에 포함시켰다.

재난지역 선포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태안 기름사고 발생 2주일 후인 지난해 12월7일, 태안군 등 충남 재난지역 주민 생계대책 긴급자금 300억원을 충남도에 내려 보냈다. 그러나 지난 18일까지도 충남도까지 내려온 생계대책비의 지급계획은 공전만 거듭했다. 그러는 동안 태안군민 3명이 막막한 생계를 비관하다 농약을 먹고, 분신까지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잇따라 태안지역은 비통에 빠져들고 있다.

앞서 충남재난지역 부단체장들은 지난해 12월28일 도에서 300억원의 생계대책비 배분을 위한 회의를 갖고 피해 직격탄을 맞은 태안군에 70%인 210억2100만원, 나머지는 충남 재난지역에 배분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후 태안군과 인접한 자치단체장과 주민들이 이같은 방침에 반발, 일부 자치단체는 생계비지원의 형평성을 들어 가처분 신청까지 거론하며 수용을 거부하자 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물꼬가 트였다.

지난 18일 오후 8시30분 천안에서 충남 6개 재난지역 자치단체장들은 긴급모임을 갖고 부단체장들이 합의한 원안대로 늦어도 오는 22일까지 각 자치단체가 정부 생계지원금을 지급받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회의분위기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다. 난항 끝에 타결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날 회의에 앞서 오전 이완구 충남지사는 이명박 당선인과 긴급회동, 생계지원금 300억원을 추가로 더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동안 정부의 생계대책비가 태안군에 쏠리는 것에 대해 서산시와 보령시 등 인접 자치단체는 관내 굴과 해태 등 양식장의 황폐화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일부 해안가는 태안과 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며 형평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터였다.

다행히 지난 15일 국제해양오염방제기금 운영 책임자가 태안군을 방문, 정부의 생계지원금과 성금은 그 액수만큼 오염사고와 관련한 배상에서 제외해 온 관례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서 대화를 원활케 했다. 섣불리 생계지원금과 성금을 풀면 배상금이 깎이지 않을까 우려하던 당국도 어깨가 가벼워젔다.

현재 성금은 충남도에 270억원, 태안군 77억, 서산시 15억원, 그리고 나머지 충남 재난지역에도 수억원씩이 모금되어 있다.

충남도와 각 자치단체는 성금을 곧 나누어 줄 방침이다.

방제조합 측도 120억원 가량을 그동안 방제작업에 투입된 장비 임대료, 인건비 등으로 구정전에 나누어 줄 계획이다. 결국 사람들의 이기로 정부의 생계대책비가 낮잠을 자면서 어민 3명이 죽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정이 어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재난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국가방재정책은 물론, 우리나라 행정분야에도 많은 숙제를 던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