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법입니다.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하는 법입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08 2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 노인종합복지관장>

제야의 종소리를 끝으로 달력은 2008년을 가리킵니다.

새로움을 고대하며 시작하는 한 해의 첫 달. 시무식을 하고 복을 건네는 인사를 교환합니다.

절기를 나누고, 분·초를 따지는 인간의 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전생을 통틀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지켜지지도 않을 계획들을 세우고 그 계획이 곧 바로 휴지가 되도록 반복하는 우리들의 시간 말입니다.

사제로 산 지 올 해로 14년이 되어갑니다.

두려움으로 출발한 신학교 생활부터 거슬러 가면 20이 넘도록'성직'이라는 본분을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

정호승 시인의'서울의 예수' 일부입니다.

'분절화된 인간의 문화에 충실하기 위해 오히려 내 삶이 예수님을 울게 하지는 않았을까''예수님을 팔아 나의 왜곡된 인격을 합리화하지는 않았을까' 이런 물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는 씨는 싹을 틔울 수가 없는 법입니다.

다투어 사는 우리네 문화 안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사제인 저 역시 앞만 보고 사는듯 합니다.

깊이 제 안의 소리를 듣고,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기보다 잰 걸음으로 쉴 새 없이 바쁘기만 했습니다.

오는 25일이면 청주교구의 사제서품이 있습니다. 부르심에 답하는 새 사제들이 저의 처음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순명과 독신을 서원하고 스승 예수처럼 살리라 각오를 다질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갈등을 겪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직면하고 절망하기도 할 것입니다. 스스로 우쭐해서 예수님보다 높은 자리를 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늘 보호되기를, 모두가 우러러 봐주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저에게,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제들에게 저의 부족한 바람을 나누고 싶습니다.

잰걸음으로 바쁘기보다 고요히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새롭게 각오 다지기를 반복하기보다 매순간과 온전히 일치하십시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십시오.

자연을 보면 인간의 움직임이 오히려 파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님! 우리 예수님! 좀 덜 움직이며 사는 지혜를 주십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