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실용'이 아니라 '포용'
농촌은 '실용'이 아니라 '포용'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1.04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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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보은 옥천 영동>

'밭도 갈고 논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 40대 중반 이후 세대라면 귀에 익은 구호일 터이다.

농촌의 표심을 겨냥한 이 구호는 80년대 이후 선거판에서 사라져 버렸다. 여촌야도(與村野都)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락을 좌지우지했던 농민들은 이제 선거구호에서 퇴출되고 그 자리는 서민과 중산층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농민들의 정치적 영향력 퇴조는 풍비박산난 농업, 줄기찬 탈농으로 공동화현상에 빠져버린 농촌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농민과 농촌은 선거구호나 공약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후보마다 경제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호언했지만 변변한 농업정책 하나 제시하지 않았다. 농촌은 이들이 아우르는 경제의 범주에 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농촌 유권자들은 이 명박 대통령당선인을 지지해 압승을 안겨줬다. 정부에 농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한·미 FTA 체결을 압박했던 정당의 후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줄기차게 선거판을 관통한 경제지상주의에 최면이 걸렸던 것일까. 아니면 한표가 아쉬운 대선주자들까지도 외면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그나마 이 당선인에게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까. 어쨋든 개방과 자율을 원칙으로 하는 시장경제 주창자인 이 당선인에게 개방의 최대 피해자인 농촌이 보낸 지지는 일방적 메아리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FTA로 피폐해질 농촌에 대해 다른 산업이 시장개방을 통해 얻게될 과실을 나눠준다는 대안논리를 제시해 왔다. 이 당선인이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란 얘기다.

우선 농촌지원정책을 보다 현실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응하는 담보를 제공해야 대출되는 각종 지원자금들이 대표적 사례다. '장기저리'라는 그럴듯한 꼬리표로 포장돼 있지만 빚더미에 몰려 신용불량자가 태반인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신불자에게 담보가 있을리 없고 보증을 서줄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지자체들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내놓은 생업자금이나 영농자금이 해마다 남아도는 것은 당연하다. 담보대신 농민이 제시한 사업을 평가하고 정부가 보증하는 방식 등이 도입해야 한다.

지원정책이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칠레와 FTA를 체결한 후 과수농가에 2010년까지 7년간 1조2000억원의 FTA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과수 주산지로 정부의 지원대상에 선정된 영동군의 경우 2005년 67억5500만원을 받았으나 2006년 18억5500만원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11억3000만원에 그쳤다. 이나마 순수 국비는 2억8250만원으로 전체의 4분의 1도 안된다. 도·군비 등 지방비 2억8250만원을 보탰고 앞서 언급했듯이 담보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융자금이 1억7500만원, 농가 자부담이 3억8900만원에 달했다. '용두사미'로 흐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농가부담액이 국비지원액보다 더 드는 사업을 FTA 대책사업이라고 벌이고 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

각종 국비지원사업에 대한 점검과 사후 성과검증도 더 엄정해져야 한다. 정부는 지자체가 지역농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학·연과 연계해 운영하는 각종 클러스터와 연구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을 지원만 하고 운영과정과 사후성과에 대한 점검이 형식에 그치다 보니 참여기관간 예산 나눠먹기식으로 흘러 투자효과가 농촌의 저변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철저한 감독과 감사로 농민을 위해 투입한 예산이 운영기관이나 대학의 배만 불리는 엉뚱한 결과를 빚도록 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이 당선인이 국정운영의 핵심코드로 삼고있는 '실용'의 잣대로 농촌을 재단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촌은 지금까지 실리와 실용의 희생양이 돼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실용이 아닌 포용의 논리로 농촌에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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