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한해를 보내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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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심 억 수 <시인>

한 장 남은 달력에는 흰눈이 펄펄 내리고 1일에서 31일까지의 숫자 밑에는 만나야 할 사람과 장소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동안 소홀했던 사람들과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요즈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늘 염두에 두고 정 쌓기를 게을리 한 잘못을 용서받으려는 심정으로 무리다 싶으면서도 매일 과음의 연속이다.

이제는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창밖을 보니 아름답게 피어나던 꽃나무들도 빈가지만 남았고, 크고 웅장한 은행나무도 잎 하나 남겨두지 않고 모두 벗어 버린 모습이다.

찬란한 봄을 태동키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나목들을 보면서 올 1년을 뒤돌아보니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잊어버리고 싶은 날들이 더 많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이나 각오보다는 한해를 그냥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했었다. 직장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집사람이 그 자리에서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욕심 없는 소박한 소망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즈음 신문지상이나 TV화면의 뉴스를 접하면서 나의 욕심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가족의 안위와 나의 편안한 삶에만 뜻을 두었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병마와 가난에 허덕이고 자연 재해에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돌아볼 생각도 못했다.

서해안 태안반도는 기름유출 사고로 인하여 수많은 어민들과 지역주민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환경단체들의 소식에 의하면 생태계가 다시 자리를 찾는 데는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주민의 고통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고통받는 시간이 된 것이다. 너도 나도 재해의 현장으로 달려가서 팔을 걷어붙이고 기름띠를 걷어 내고 있는 현장을 뉴스로 보면서도 심각성을 몰랐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극심한 이기심에 사로 잡혀있었나 부끄러운 마음이다. 나도 집에 있는 헌옷이나 신문을 찾아 들고 이번 휴일에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야겠다.

지구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나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 그리고 자자손손 이어 살아가야 할 곳이다. 또한 아름답고 청정하게 사용하고 물려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만이라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더불어 행복한 삶을 가꾸려 노력하여야겠다. 올곧은 정신유산과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미풍양속을 더해서 청정한 삶의 터전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정해년 창밖의 저 나무들처럼 빈가지로 서서 찬바람의 매를 맞는 반성의 시간을 보내며 또 다시 밝아올 새해에는 좀 더 나은, 남들을 위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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