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근대사회로의 전환"
"동학은 근대사회로의 전환"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7.12.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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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동학의 밤 학술회의
청주의 농학농민혁명은 청주읍성 탈환을 시작으로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맞이한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동학농민혁명의 의의란 학술회의에서 주장됐다.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22일 서원대 미래창조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충북동학의 밤 학술회의에서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이 같이 주장하고 "동학농민군이 3차례 청주성 탈환을 시도한 것은 충청도를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내륙으로 북상하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또 "전국의 동학농민군은 무장봉기 후 여러 군·현의 읍성을 점거하며 봉건사회와 외세에 대항했다"면서 "청주의 동학농민군이 청주성 점거를 3차례나 시도한 것은 일본에 대적하는 근거지로 만들고, 또 서울로 가는 전략 거점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고 그동안의 연구를 토대로 청주의 동학 활동을 발표했다.

김양식 충북개발원 연구원은 "청주에는 동학을 기념하는 사업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지역 정체성과 지역 정신문화를 구현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기념사업이 필요하다"면서 "동학의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기 위한 학술조사와 연구사업, 유적지 정비사업, 동학정신을 문화콘텐츠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동학농민군이 전투하다 사망한 석교동에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청주성전투기념공간 설립은 물론, 보은 장내리 사적공원, 보은북실 기림공원, 유적지를 알리는 안내판과 표지석 설치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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