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1 2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시인 최영미는 지난 1994년 발표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다음과 같이 절창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 주인대신 상을 치우고 /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전문·1994·청작과비평사)

시인의 말처럼 어쨌든 '잔치'는 끝났다.

누구는 쾌재를 부를 일이고, 누구는 비탄에 젖어 있을 것이며, 또 누구는 허무하기 그지없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대저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 다수결의 원칙이 우선되는 허울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투표에 참여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무엇이 있을 건가.

후보에서 당선자로, 또 대통령으로 신분이 급상승하는 절대 직선의 가치를 지켜볼 뿐, 일상은 단 하루 만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부터 싱거워진 개표 결과로 심드렁해진 그 해 겨울.

국민은 선거로 인한 주중 휴일의 달콤함을 뒤로 한 채 어김없이 출근길 교통체증에 몸을 실어야 하며, 그 이후 말을 아끼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시인의 말처럼 시대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투쟁의 치열함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혹은 지극히 평화적으로 사랑에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의 말 그대로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선자의 일성에 따라 '섬김'의 진리가, 혹은 진실이 이번 만큼은 울울창창하게 무성해지기를 지켜볼 따름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일도 온전히 국민의 몫이고,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는 일도 오롯이 국민이 해나가야 할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은 이미 크게 바뀌고 있다.

더 이상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격언은 명제가 될 수 없다.

혹자는 21세기형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혹자는 낮은 투표율과 반대를 위한 반대에 기우하면서 맞은 새로운 아침.

대통령이 될 사람이 바뀌었다고 천지개벽을 하는 일도 아닌데, 다만 내 한 표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정권교체에 일익이 됐다는 자부심만으로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새로 바뀌는 것은 분명 희망이고, 또 그리하여 좀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희망이며, 무엇보다도 꿋꿋하게 겨울을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대다수 대한민국의 사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