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담론과 맞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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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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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삶에 대하여'('문학과 사회', 2007년 가을호) 는 서술 대상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일단 독자들을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먼저 아내를 잃은 '그'를 서술의 대상으로 한다.

그는 아내가 병에 걸린 다음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죽음은 뜻밖의 일이 되고 만다. 호흡을 멈추고 마치 벽돌이나 마네킹처럼 고요하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든다. 두 번 다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 끊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가는 길. 그 길에서 그는 '여자애'를 만난다. 그리고 서술의 대상이 그에게서 여자애로 넘어간다.

망원경을 가진 여자애는 그를 아빠라고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망원경으로 달래가면서 자란 여자애. 그 소녀는 아빠에 대해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에게 묻지만 엄마는 아빠가 먼 곳에 있으므로 망원경을 통해서 보라고 한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에 아빠가 보내는 것이라며 선물을 하나씩 주는데 처음에는 작은 코끼리 인형이었고, 크리스마스에는 가방을 보내주었다. 아이는 코끼리 인형을 가방에 달았다. 이것은 이야기 안과 밖을 연결하는 매체가 된다. 아빠로부터 편지는 계속 여자애에게 전달되었으나 그것이 엄마가 써서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편지는 엄마가 여자애에게 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권위적인 장치인 셈이다. 자신을 버려야 살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은 엄마는 아이의 아빠가 진짜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아이의 아빠를 만들기 쉬운 것처럼, 엄마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맞춰 지낼수록 생활하기가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빠의 목소리로 전한 편지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을 함께 믿으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여자애는 이런 권위적인 아빠의 목소리로 혼란에 빠진다. 망원경으로 아빠를 찾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속에서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는 여자애는 문제적 인물인 셈이다. 따라서 여자애는 자라면서 망원경으로 먼 곳을 보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속상한 일투성이었다.

여자애는 다시 망원경을 볼 수밖에 없었으며, 망원경은 곧 순수한 세계로 진입하는 매체인 셈이었다. 아이는 망원경으로 아빠를 찾기도 하고 이정표를 보기도 하며 거리의 집들을 살피기도 한다. 도심의 거리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찾아낸 것은 털 많은 코끼리였다. 여자애는 "털 많은 코끼리. 도시를 나다니는구나"라고 외쳤다.

여기에서 앞부분 서술의 대상이었던 그의 아내가 죽어가면서 중얼거렸던 말이 "털 많은 코끼리. 도시를 나다니는구나"라는 말을 기억에서 되살려보자. 우리는 쉽게 여자애와 그의 아내를 동일시 할 수 있게 된다. 죽어가면서 중얼거리는 아내와 아빠를 만나러 가는 여자애가 같은 말을 외침으로 인하여 그 둘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아내의 주검을 두고 담배를 사러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몽환적인 상태에 이끌린 것이다. 그런 속에서 아내의 어린 시절과 아내의 죽음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제목은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필요로 한 것이며, 망원경을 통해 찾고자 했던 아버지의 모습, 즉 엄마가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던 남과 다르지 않은 삶을 보았으며,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 순수한 가치로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작가적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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