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범벅이 된 우리네 삶
기름범벅이 된 우리네 삶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0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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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윤 승 범 <시인>

태안 반도에 사상 유례가 없는 기름이 유출됐다. 엄청난 양의 기름이 흘렀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주민들과 자원봉사자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기름 제거용 흡착포도 모자라고 어선은 배를 띄워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연료가 없다. 노동력은 있어도 정부의 지원은 미비하다. 큰 재해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나라의 국가 경영능력은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난리가 나면 수재민 돕기를 하고, 사고가 터지면 자원 봉사자를 찾는다. 그래도 국가는 정해진 틀 안에서 조금의 융통성도 없다. 나중에 서류검사를 해서 착오가 생기면 담당공무원이 징계를 받아야하니 어쩔 수 없단다. 고지식함도 이 정도가 되면 고질병이다. 그나마 이 정도나마 유지가 되는 것은 이 땅의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 IMF 때에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자고 집안에 잠자고 있던 금붙이를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힘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다. 서민의 힘으로 이루어 놓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서민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 국난(國難)은 모두의 일이라고 하여 국민의 힘을 빌리고, 국민들의 신산한 삶은 나몰라라다. 세금은 높고, 물가는 잡을 수 없고, 경기는 험난하다. 그래도 누가 애써주겠다는 사람이 없다 - 어제 대선 투표를 했다. 어제까지는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나 오늘부터는 없다. 어디 우리가 위정자들을 한 두 번 겪어 봤는가. 이제 다음 총선이나 대선 때 민생을 살피겠다고 나오겠지만, 그것도 그 때 뿐일 것임을 안다.

기름에 오염된 태안반도는 수십년 간 제 구실을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 살던 사람들도 막막한 생계를 이어갈 것이다. 그들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기껏해야 특별 재해지역으로 선포해서 세금 몇 달 유예, 군 입대 몇 달 유예, 그리고 소소한 지원. 그나마 시간이 지나 잊을만하면 그것도 흐지부지 될 것이 뻔하다. 국제적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것도 결국은 주민들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

세월은 부쩍 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고 한다.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 나아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네 삶이고, 정치고, 경제고 무엇 하나 나아진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한해가 간다. 그리고 또 온다. 별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새해가 온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시인이야 달관의 웃음으로 살았겠지만, 우리네 웃음은 그저 어이가 없어 허탈할 뿐이다. 왜 사느냐고 그 물음에 잔잔히 답할 수 있는 그런 세월이 언제나 올까 싶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기름범벅이 된 우리네 삶이니 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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