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절망' 걷어내는 희망의 땀방울
'검은 절망' 걷어내는 희망의 땀방울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12.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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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태안 구름포해수욕장 방제 자원봉사를 펼치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9일째, 차가운 아침공기를 가르며 생태교육연구소 터 회원들과 태안으로 향했다.

사전에 현지 담당자와 전화통화로 고무장화와 마스크, 방제복, 식사 등은 각자 준비해 오라는 안내와 함께 피해지역 중 사각지대인 구름포해수욕장으로 인원배정을 받은 뒤였다.

청주를 출발해 구름포해수욕장을 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는 대형버스는 대부분 유출현장으로 가는 자원봉사단 차량이었다.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의 발길을 태안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구름포해수욕장을 도착하니 훅, 하고 기름냄새가 코끝에 전해졌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바다는 파도와 모래가 아름다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어 대재앙이란 말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이곳이 사고현장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임시로 설치된 의료지원단 캠프와 자원봉사자를 위한 자원가들의 캠프, 그리고 하얀색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의 기다란 행렬뿐이었다. 바다는 그렇게 조용했다.

일행은 해안과 떨어진 캠프에서 방제옷으로 갈아입고 바다 물때에 맞춰 현장에 투입됐다. 바다로 가는 길에는 주홍 비닐포장을 해안과 연결해 융단처럼 이어 놓았다.

처음에는 봉사자들을 위한 길안내 표시겠거니 했는데, 2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기름제거 포대를 옮기는 길임을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닷가로 한 걸음 옮겼을 뿐인데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혹했다. 기름 제거한 후 바다 가장자리에 수북이 쌓인 포대와 까맣게 기름을 뒤집어 쓴 돌들, 불룩해진 배를 하고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물고기, 고무통마다 가득 담긴 원유는 사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연일 해안선을 따라 긴 띠를 이룬 기름과 검게 변해버린 해변의 모습을 전해주고 비쳐주었지만, 직접 목격하지 않은 현실은 그저 또 대형사고였던 것이다.

더구나 기름유출사고 현장과 11km 떨어진 구름포의 피해가 이 정도라면 사고현장을 중심으로 서해바다의 오염 확산은 측정조차 어렵다란 생각이 들었다. 출발 당일인 16일 피해지역이 천수만까지 이어졌다는 보도가 얼마나 다급한 현실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넓은 백사장은 기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전체가 얼룩덜룩 무늬져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해변도 모래 한켜 걷어내면 기름이 깊숙이 박혀 검은 무늬를 이루고 있다. 파도에 밀려 쌓인 기름 위로 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모래가 덮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음이다.

현장 안내자는 바위 사이에 고여있는 원유를 제거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일행을 바닷가 바위로 안내했다. 검은 기름에 덮인 바위는 죽음의 그림자를 덮어쓴 듯 기름범벅이었다. 바위 틈으로 고여있는 원유는 기름제거용 부직포조차 감당이 안돼 바가지를 이용해 퍼냈다.

끈적끈적한 원유가 포대에 담기고, 포대는 백사장에 가득가득 쌓여가도 기름과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위 틈새에서 기름을 뒤어집 쓴 게 한 마리가 꼼짝 못하고 있었다. 죽었나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집게발을 쳐들고 위협을 준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 게의 본능적 행동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할까.

바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염된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검은빛 재앙이었다. 쉼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며 확산일로를 걷고 있는 바다오염은 띠를 이루며 번져나고 있다.

더구나 물과 기름의 성질로 인한 결정체들은 몽글진 채 수면 아래 가라앉고 있어 더 큰 환경오염을 예고하고 있다. "닦고 퍼내도 하룻밤 자고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바다의 모습에 수없이 절망한다"는 주민의 이야기는 터전을 잃을 상실감 이전에 이곳이 얼마나 처절한 전쟁터인가를 말해준다.

쉬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오후 4시까지 이어진 작업이었지만, 뒤돌아나오는 현장은 처음보다 나아진 것 같지않아 발걸음이 묵직했다.

수 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달려들어 닦고 닦아내도 표시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바다는 기름으로 덮여있었다.

환경전문가는 원상 복구되기 위해선 50년의 시간이 거릴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상 최악, 대재앙, 검은 죽음 등 온갖 자극적인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있는 그대로의 태안 현장을 설명할 수 없다.

아픔이 고통이 되고, 고통이 절망이 되고, 절망이 절망으로 서 있는 태안에서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마음의 띠를 이룬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마음과 마음을 잇고 있는 인간 띠. 그들의 손길 하나 하나가 새로운 기적을 일궈낼거란 믿음으로 태안의 절망에서 희망을 본다%연숙자기자

계속되는 방제작업 자원봉사자들이 돌에 묻은 기름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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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재앙의 잔재 태안 구름포해수욕장 백사장 기름을 제거해도 다시금 밀려오는 파도에 모래가 덮여 악순환이 반복이 되고 있다.


해안가에 쌓여있는 기름 거둬들인 원유를 넣은 고무통이 즐비하게 서 있다.


꼼짝 못하는 농게 원유를 뒤집어 쓴 게 한마리가 꼼짝도 못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구슬땀 행렬 구름포해수욕장 근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바다를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양손에 작업도구를 들고 방제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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