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동 목사의 생애와 사상
정진동 목사의 생애와 사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1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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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열사(烈士) 정진동 목사께서 2007년 12월10일 월요일 오후 5시, 향년 75세로 타계했다. 그는 1932년 12월26일, 충북 청원군 옥산면 호죽리에서 출생한 이후 민주와 정의의 한 길을 걸었다. 그의 제단에 걸린 것처럼 '민중의 벗 정진동 목사'였다. 그가 가난하고, 힘들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지치고 어려운 약자(弱者)들을 위하여 한뉘를 살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인격적으로도 존경을 받던 어른이거니와 충북 민주민족민 운동의 큰 별이었다.

2007년 12월13일 목요일, 오전 9시 청주시청에서 상당공원까지 삼백여 조문객이 그를 따랐다. 열개의 만장과 소박한 상여와 구성진 만가(輓歌)와 조문객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그를 추모하는 거룩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충북의 모든 정파와 단체가 함께한 정진동 목사 '민주사회장'은 정의와 의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또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의 장중한 행진곡은 그의 평생에 바치는 조곡이었고, 수백명의 눈물은 그의 영혼에 바치는 조사(弔辭)였다. 그날 광주민중항쟁 등의 민주화운동으로 수여받은 국민훈장 모란장은 그의 일생이 개인사가 아니라 한국사회사의 한 장임을 알리는 증명서였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개신교의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목사가 되었지만 교단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를 파문(破門)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화려하고 풍요로운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 밑바닥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온몸으로 기도했다. 예수가 부자와 권력자 곁에 있지 않고 노동자 농민 서민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한국교회가 예수를 따르고 있지 않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의 교회에는 투박한 소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다. 그 십자가는 예수그리스도의 낮은 곳에 임하라는 말을 실천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또한 제도에 대한 저항이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영적(靈的)이거나 신학적인 측면과 함께 사회제도사적 측면이 있다.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똑같지만 사회제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서로 다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로 분화되었거니와 개신교 안에서도 형식과 방법이 같지 않다. 어떤 종교든지 역사가 오래되면 형식과 제도가 고착되게 마련이고 그래서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힘, 즉 보수적 경향이 짙을 수밖에 없다. 정진동에게 그런 보수적 제도는 타파해야 할 구습(舊習)이었다. 그래서 그는 민중의 벗으로 낮은 곳에 자리하면서 온몸과 정신으로 제도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기독교 교리를 지키고자 하면서도, 그리스도가 행한 언행을 더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에게 교회에 대한 저항과 정치사회에 대한 저항은 하나다. 크게 보면 그의 사상은 비타협적 일원론이다. 그는 평생 부정, 부패, 권력, 권위, 안락, 부귀 등에 대한 일체의 비타협 저항정신의 일원론을 견지했다. 아울러 그는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역사정의실천협의회, 민통련 등 수많은 단체를 설립하고 주도하면서 충북을 넘어서 전국 민주화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족적을 남긴 열사(烈士)다. 한때 그는 정당활동을 하면서 청주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저항의 한 방법이었으며 민주화운동의 한 방편이었다. 이 비타협 저항정신은 기독사상, 특히 예수그리스도의 기독적 저항사상과 일치한다.

정진동 목사는 진정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어떤 일을 할 때 어눌하고, 부족한 것은 괜찮지만 진정성과 진실성이 없다면 그것은 허위와 위선으로 빠질 염려가 있다고 경계했던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榮達)을 취한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으나 엄혹하게 비판했고, 한때의 감정으로 민중운동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무섭게 질타(叱咤)했다. 따라서 정진동 목사의 언행과 인생 자체가 이 시대의 교훈이고 지표다. 그가 이루려던 천국은 민주민족민중이 살아 숨쉬는 평등과 통일의 세상이었다. 하나님의 종이면서 민중의 벗이었던 열사 정진동 목사는 우리 시대의 빛나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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