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교부금의 위력
특별교부금의 위력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7.12.12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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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보은/옥천/영동>

'교부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궁색한 지자체들을 쥐락펴락 해온 행정자치부가 이번에는 지방의회에까지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행자부로부터 의정비 인하권고를 받은 지방의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비록 여론과는 배치됐지만, 행자부 지침에 한치의 어긋남 없이 절차와 일정이 진행돼 의정비가 결정됐는데, 바로 그 지침을 내린 행자부가 스스로를 부정하며 딴지를 걸고 나오니 의회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모순 투성이의 기준과 원칙을 앞세운 압박 앞에서는 모멸감이 스멀거린다.

의정비 안내리면 교부금도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얘기는 말이 좋아 권고지, 한 지방의회 의장의 말마따나 공갈도 이런 공갈이 없다. 턱도 없는 공갈에 굴복하자니 자존심이 울고, 소신대로 밀어붙이자니 실제로 교부금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덤터기를 몽땅 뒤짚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원님 행차뒤에 불어댄 행자부의 나발'에 의정비 인상에 대한 반대여론까지 가세하는 것도 의원들에게는 부담이다.

권고를 받은 충북도내 7개 지자체 가운데 영동군의회가 조례심의에서 인상안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행자부 권고안을 수용했다. 의원들이 고심끝에 치욕을 감수하기로 한 것은 나중에 불어닥칠지도 모를 후폭풍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자체가 추진하는 대단위 사업이 국비 확보에 차질을 빚거나 해서 표류하는 경우 똑 떨어지는 핑곗거리가 될 수 있으며, 이 때 '의원들의 과욕때문에 사업이 망가졌다'는 여론의 뭇매를 피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차기 선거에서 상대후보가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더 없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들도 했을 것이다.

졸지에 지방의회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행자부의 특별교부금은 '중앙정부의 쌈짓돈'으로 불릴 정도로 명백한 기준없이 정부가 자의로 쓸 수 있는 돈이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은 이 임자없는 돈을 한푼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벌인다. 그래서 행자부 담당과장은 웬만한 단체장들도 머리를 조아릴 정도로 끗발이 대단하다고 한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행자부에 압력을 넣어 모 사찰에 지원토록 한 10억원이 바로 이 재원이다. 재정이 허약한 지자체에 대한 긴급수혈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변 전 실장의 사례처럼 악용될 소지가 크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2003년 특별교부금 운영의 비합리성을 들어 폐지 또는 개선하라고 지시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특별교부금은 여전히 유지되며 일선 지자체를 통제하는 악역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특별교부금을 가장 많이 지원받은 지자체는 경남 김해시다. 노 대통령의 고향인 진영읍 봉하마을을 안고 있는 김해시는 지난해 64억5000만원을 받았다. 245개 지자체의 평균 배정액 14억원을 4.6배나 초과하는 액수다. 특별교부금 운영방식을 개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흐지부지된 이유를 알 만한 대목이다.

특별교부금이 지자체뿐 아니라 지방자치의 본방인 의회까지도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심각하다. 행자부와 지방의회의 대립이 의회의 일방적 패배로 종결될 경우 앞으로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는 행정뿐 아니라 의정까지도 행자부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 권고안에 저항하는 지방의원들이 '의정비 더 받자는 욕심에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고 항변하는 데는 부당한 전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져 있다고 봐야한다. 여론을 외면함으로써 이번 사태를 자초한 책임은 별도로 물어야겠지만 말이다.

행자부는 권고안을 철회하고 의정비 인상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표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4년전 행자부 업무보고에서 "행정과 정치의 신뢰를 깎아먹는 특별교부금을 폐지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한 대통령의 지시를 실천하는 것이 다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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