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과 '저런 자식'
도올 김용옥과 '저런 자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10 2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 승 환 <단재문화예술제전 추진위원장>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런 자식이 있나!"와 같은 벽력의 함성과 그보다 더한 욕설이 난무하자, 1000여명의 청중은 긴장의 끈을 바짝 죄었다. "저런 놈은 당장 패대기를 쳐야 한다"는 고함소리가 청주예술의전당을 뒤흔들었다. 이 예기치 못한 사태는 단재문화예술제전이 열린 지난 12월8일 토요일 오후 6시 40분쯤의 일이다. '저런 자식'은 도올 김용옥이었고 '패대기'의 주체는 고령 신씨 가문에서 온 분들이었다. 청중석의 어떤 이는 김용옥의 기벽(奇癖)을 들어서, 그가 그런 사태를 예견했으면서도 보한재 신숙주를 비난했다고 웅성거렸다.

도올은 사육신인 성삼문은 물론이고, 유응부까지 싸잡아 비판하면서 더욱 심한 표현으로 신숙주를 비난했던 것이다. 그 내용인즉, 주자학적 유교 윤리와 지조 그리고 신의로 볼 때 보한재 신숙주는 천하의 악한(惡漢)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재를 높이려다 보한재를 낮춘 이 비교상대의 발화법이 설화(說禍)를 당할 줄이야! 단재의 직계 조상은 신숙주라는 대목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단재의 할아버지 신숙주가 신의를 저버리고 의리를 배신했는데, 그것이 조선시대 변절의 시조(始祖)격이라는 부분에 와서 그는 칼날 탁음의 목청을 높였던 것이니 심상치 않을 것은 예견된 바였다. 즉각, 정중앙의 10여명 고령 신씨 문중 대표들께서 솟구쳐 일어서면서 종주먹을 휘둘렀다. 큰 목소리는 '저런 자식'이었다. 그 분들은 여러 차례 항의와 호통을 쳤는데, "저런 놈은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라며 강연장 밖으로 나갔다.

'저런'이 '저럴' 줄 알고 있었다는 고령 신씨 문중은 세종(世宗)이 보한재를 얼마나 아꼈는지 아느냐고 특별히 강조했다. 신숙주로 말하면 문화부에서 선정한 '이달의 문화인물'이고 일전에는 학자들이 '보한재 문학비'도 세운 것 등에서 보는 것처럼 중세 한국사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도올은 '역사를 잘못 아는 못된 놈'으로 격하되었다. 덩달아 우리도 '저런 놈을 초청한 무식한 자들'로 분류되었다. 그렇게 휑하니 떠나면서 남긴 말은 '고발'과 '고소'였다. 당장 문중 회의를 거쳐서 김용옥을 고발고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온 단재 문중의 대표들께서는 12월8일 단재 생일의 어둠을 가르고 화살처럼 떠나갔다.

난감(難堪)을 안고 다시 강연장에 들어섰다. 놀라운 것은 1000여 청중이 미동을 하지 않고 도올의 사자후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전히 잠자리 잡는 소년의 발걸음으로 무대를 종횡하며 열정적인 강연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마침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과 기독교가 등장했는데, 역시 비판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했다. 모두가 변절했지만 단재는 결코 변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수사법이었다. 행사 주최측은 여전히 아슬아슬한 벼랑을 걷는 심정이었다. 이번에는 기독교 특히 천주교에서 '저런 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두 시간의 강의 중에 그런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지만, 강연장의 긴장이 사뭇 팽팽했음은 물론이다.

도올은 강연 중간에, 보한재 신숙주를 비판한 것은 단재 신채호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고자 함이며, 고령 신씨 가문을 높이고자 한 것이지 폄하(貶下)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말하자면 조상 신숙주의 잘못을 후손 신채호가 다 갚았고, 신규식과 같은 분의 고향인 충북 청주·청원은 역사에서도 중요한 고장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랬을 것이다. 역시 도올다운 자신감이었다. 세상에는 김용옥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사이비 학자라는 원색적 공격으로부터 연예인이라는 인신공격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백가쟁명하다. 어디를 가나 그의 발화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폭약이다. 그날도 도올의 폭발성(暴發性)이 확연히 드러난 강연이었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청하고 박수를 드린 충북의 시민들도 참 대단한 청중이었다. 참으로 특별한 강연이었다. "도올도 잘했다고 할 수 없지만 고령 신씨 문중이 지나쳤다"라는 한 시민의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단재와 보한재가 정신의 창을 꼬나잡고 대결하는 한 장면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