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화국, 대한민국 공화국
삼성 공화국, 대한민국 공화국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28 2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 청 논 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이번엔 삼성이 제대로 걸려들었다. 그룹의 심장부까지 드러내게 됐으니 그 당혹함이야 오죽하겠는가. 내부 고발의 '효용'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시쳇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똑 떨어지는 증거와 자료를 가지고 덤벼들기 때문에 한방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사실 기업이 투명하려면 이러한 내부 고발의 가능성에 대한 경계, 그 이상의 묘약은 없다. 기업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누가, 갑자기 뛰쳐나가 조직의 치부를 까발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부정은 쉽지가 않다.

특별수사팀이 꾸려지고 특검법이 통과됨으로써 앞으로 벗겨질 삼성의 베일이 궁금하기만 하다. 66년 사카린밀수를 시작으로 93년 부산 구포 열차 참사, 2002년 대선자금 제공, 2005년 X-파일 사건까지 풍전등화의 고비마다 번번이() 살아 남은 삼성의 내공은 과연 무엇인지, 이 또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이다. 삼성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였다면, 70년 역사의 왕국은 이미 오래전에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을 것이다.

삼성의 힘은 물론 '돈'이다. 이 돈이 대한민국 곳곳에 삼성의 장학생을 키웠고, 이들이 지금까지 삼성왕국의 버팀목이 되어 왔다. 김영철 변호사가 연출하는 폭로전의 압권은 바로 이들 장학생의 명단이다. 지금까지 사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정부, 국회, 검찰, 언론 안 걸친 곳이 없다. 삼성문제에 있어 언론은이미감시견(Watching dog)이 아닌 애완견이 됐다. 지금 누가 누구를 나무랄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의 폭발력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두껍게 가려져 있던 대한민국 공화국의 일그러진 실체를 가장 적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60년 전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국회를 만들고, 3권을 분리시켰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다 된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의 태도'(way of life)에 있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행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안 된 얘기지만 '미국식 민주주의'는 지난 2001년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릴 때 종언이 예고됐고, 미국으로부터 학습된 '한국적 민주주의'는 95년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을 때 강력한 경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그 경고를 등한시함으로써 지금 우리는 끝내 국가의 시스템 자체가 '돈'에 매몰된 천민자본주의의 천한 민주주의에 직면하고 말았다. 삼성 사태는 이러한 거대담론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어차피 또 백해무익하다. 비자금 몇푼 밝혀내고 이 돈을 받은 사람 몇 명을 잡아 낸다고 해서 박수칠 일이 절대 아니다. 관건은 국가 차원의 정화의지다.

이번 삼성의 시련이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가 있다.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말 그대로 내부 비리에 대해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이들은 여전히 밀고자 내지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이들이 없으면 부정과 진실은 영원히 묻힌다. 염탐꾼 닉슨을 낙마시킨 딥 스로트도 내부 고발자였고, 감사원의 비리를 들춰낸 이문옥도 내부 고발자였다. 2002년, 타임즈는 3명의 여성 휘슬블로어를 올해의 얼굴로 선정했다. 이중엔 9·11테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도 수사하지 않은 FBI를 고발한 이곳 법무부장이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와 부정에 눈을 감는 것도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이를 드러내 밝히는 것은 더 어렵다.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법적인 보호막이 시급하다. 안 그러면 무조건 감옥행이거나 법정에 서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