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선생 박자혜 여사 합폄식
신채호 선생 박자혜 여사 합폄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2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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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청 논 단
김 승 환 <단재문화예술제전 추진위원장>

지난 토요일인 11월 24일 청원군 귀래리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고령 신씨 단재의 집안과 후학들 20여명이 조촐하게 진행한 이 행사에서는 합폄(合)이라는 특별한 어휘가 등장했다. 언론에도 알리지 않았고 또 거창한 예식도 생략했으나, 얽히고설킨 매듭 하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신채호 선생 박자혜 여사 합폄식'이다. 합폄식이란 합할 합(合) 하관할 폄 ( ) 즉, 합하여 하관을 한다라는 뜻이다. 단순한 합장이 아니기 때문에 합폄이라는 다소 특별한 어휘를 선택했던 것이니, 그것은 신채호 선생과 선생의 부인인 박자혜 여사의 영혼이 71년 만에 재회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참 신기합니다. 이렇게 따스하고 또 온화하니 말이지요'라는 집안 조카의 말은, 단재 관련 행사 때만 되면 칼바람이 불고 눈보라기 치던 기억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그간 국회(國會)에서도 논란이 되었고, 전국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신채호 선생 묘소 문제가 이렇게 정리되고 해결되는 것이어서 필자는 단재의 후학으로 무척 기뻤다. 이로써 단재 묘소는 현재 이전한 그 자리로 확정된 것이니 참으로 다행하다. 단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편치 못했다. 1936년 장례 때부터 곡절이 많았던 선생의 유골이 또 수난을 당한 것은 2004년 9월 22일이다. 집안에서 여러 이유로 봉분을 파헤쳐 이장(移葬)을 했던 것이다. 그 때 임시 안장한 자리가 바로 이번에 확정된 단재의 묘소가 되는 것이고 또 부인과 영혼의 합장을 하는 것이어서 자못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추모하는 글에서도 나왔거니와 참으로 애석한 대목은 '고아원'이다. 박자혜 여사가 서울 인사동에서 조산원을 할 때 삼순구식(三旬九食)으로 끼니를 잇기가 어려워서 자식인 신수범씨와 신두범씨가 피골이 상접했다는 소식을 단재가 접했다. 민족광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유리걸식을 하는 처지의 단재에게 가족의 간난(艱難)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은 마침내 서울의 아내에게 '정 어찌할 수 없거든 고아원에 보내라'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식을 고아원에 보내라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런 단재는 현재 국적이 없다. 보훈처의 보훈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지만 행정개념에서는 무국적자다. 1912년 공포된 조선민사령 때문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호적법은 이때 만들어진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제의 신민(臣民)을 거부한 신채호 선생은 호적이 없는 무국적자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현재 국회에는 선생과 같은 분들의 국적회복을 위한 법률이 상정되어 있지만 통과는 요원하고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국회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매국노 이완용은 엄연히 한국 사람인데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 사실은, 기가 막히고 분이 삭히는 대목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단재를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느냐라고 되묻겠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명목과 명분이 중요한 것이므로 선생이 한국 국적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치욕스런 일이다.

중국의 여순 감옥에서 옥사(獄死)하기 전에, 선생은 감옥이 무척 추우니 두툼한 솜옷 한 벌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런데도 아내 박자혜 여사는 그 옷 한 벌을 보내주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비타협적인 민족독립운동가의 고난에 찬 삶이었던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 또한 비참하게 살았다. 반면 친일파와 매국노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한편 자식 교육을 잘 시켜서 그 후손들은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한탄만 가득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으니 이것이 더욱 부끄럽다. 한 가지 위안은 선생의 넋이 사랑하는 아내와 평안히 안장된 것이다. 부디 선생이시여, 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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