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군수의 소신인사
대추군수의 소신인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1.2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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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부국장(보은·옥천·영동)>

연전에 한 대기업과 서울의 한 구청이 6개월간 직원들을 교환 근무시켰던 적이 있다. 민간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려는 구청의 요청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 상대 기관에서 일정기간 근무를 마친 대기업 직원과 공무원들이 내놓은 감상 몇가지가 생각난다. 대기업 직원들은 공직에서 직원간 정이 오가는 인간미를 느꼈다고 했고, 공무원들은 기업의 직장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전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비정한 기업내 직장문화에 비해 공직이 안정적이고 여유롭다는 얘기로 들렸다.

흥미로웠던 것은 기업체 직원들이 이렇게 얘기했던 대목이다.

"새로운 업무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 업무를 우리 소관으로 끌어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공직에서는 반대로 신규 업무를 떠맡지 않으려고 애를 쓰더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업에서는 개인적으로든, 소속 부서에서든 맡는 일이 많아야 구조조정이나 조직재편 등에서 살아남는다. 일감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고용주가 퇴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격무는 물론 업무의 성패에 따라 패널티를 안게 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업무 다툼을 벌이는 것이 기업 종사자들의 고달픈 생리인 것이다. 이들에게 신규 업무를 다른 부서로 떠넘기기 위해 경쟁하는 공직의 행태가 기이하게 비친 것은 당연하다.

기업에 비해 느슨한 공직의 근무환경은 '철밥통 논리'로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인사 시스템의 후진성에 기인한 바 크다. 단체장들마다 업무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인사행정의 파격을 외치고 있지만, 연공서열식 승진제도는 여전한 대세이다. 기초단체 서열 3위이자 실무부서를 총괄하는 기획감사실장 자리가 정년이 임박한 고참 사무관들이 거쳐가는 종착역이 되고 있는 현실이 근사한 사례다. 인사정책이 타성을 벗지 못하니 과실없이 적당히 근무하는 것이 '장땡'이고, 일감이 많으면 책임만 늘 뿐이라는 인식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추군수로 통하는 이향래 보은군수가 올해 단행한 한 승진인사가 유독 신선감을 준다.

이 군수는 지난해 민간사업자가 보은읍에 추진 중인 골프장 건설사업이 수년째 답보를 거듭하며 무산 위기에 놓이자, 지역경제를 위해 골프장 건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골프장 지원을 전담할 시설지원단을 설치했다. 6급을 대상으로 담당자를 공모하며 업무성과를 다음 인사에 철저히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집불통 토지주들을 만나 설득해야 하는 고된 업무인데다 결과도 불투명한 판이니 응모자가 있을 리 없었다. 마감시한이 다 돼서야 한명이 나섰다.

구영수 당시 농정담당이었다. 구씨는 업무를 맡은 후 그야말로 구두 밑창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전방위로 뛰었다. 그는 착수 4년이 되도록 30% 매입에 그쳤던 토지를 1년 만에 85%까지 사들여 사업승인까지 받게 함으로써 죽었던 사업을 살려냈다.

이 군수는 약속대로 지난 7월 구씨를 승진과 함께 장안면장으로 발탁했다. 승진이 더딘 농업직이면서도 6급 임용 8년만에 승진하는 파격이었지만 청내에 불만은 없었다.

이 군수는 지난 8월 3695억원이 투입되는 신정종합리조트를 담당할 6급을 또 공모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능력면에서 내로라 하는 6급 4명이 응모했다.

이 군수의 성과인사에 대한 강한 소신과 실천이 직원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민간투자컨소시엄과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 사업은 공모를 통해 담당자를 발령한 후 실시협약을 위한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다른 지자체들이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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