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정치 참여
교수들의 정치 참여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7.11.0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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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인 섭 <사회문화체육부장>

대통령선거를 40여일 앞둔 요즘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거나 외곽조직 또는 캠프에 참여하는 폴리프로페서(Polifessor·정치교수)들이 부쩍 늘었다. 선거구도나 후보별 지지도 등 일반적 정치지표와 함께 어떤 교수가 누구 캠프에 참여하는지 역시 약방의 감초처럼 여겨져 선거의 또 다른 맛을 낸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내주지않고 있는 이명박 한라나당 후보 캠프에는 교수 1000여명이 이런 저런 직함과 역할을 부여받아 활동 중이라고 한다.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 캠프 역시 교수 100여명이 참여한 상태라고 전해진다. 다른 후보 진영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십보 백보'로 간주해도 괜찮을 듯 싶다.

충북의 정치권에서도 포럼 등 외곽 조직을 맡아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수십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고, 이래저래서 대통령이 돼야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류의 정치 참여와 개입은 정도는 달라도 '경향(京鄕)'을 가릴 것 없이 흔한 일이 됐다. 그래서 한편에서 바라보면 '물론(勿論)의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지만 달리보면 공무원 신분의 교수까지 정치 참여를 허용해야 하는지, 적정한지 여부에 대한 의문 역시 따라 붙는다.

이들의 정치참여를 폭넓게 보장한 것은 물론 법률이다. 정당법 제22조(당원의 자격)는 공무원의 정당가입·정치활동을 금했지만, 전임강사 이상 총·학장까지의 교수들은 예외로 했다. 공직선거법(제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역시 이들의 선거운동을 보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정치 참여는 도전을 받은 대상이기도 하다. 법적으로는 보장됐다 하지만, 일반인들이나 교수사회 내부에서나 긍정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이들은 인적 인프라가 박약했던 3공화국 시절 '인재'들이 정부와 정치권에 참여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것에서 시작된 제도와 행태가 예나 지금이나 왜곡되기 십상이라는 점을 든다.

당시 정치에 참여했던 이들의 긍정적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재 통치 논리에 부역했다는 부정적 실체와 잔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독재에 맞섰던 교수들과 이들의 '출세'가 대비됐던 점도 당연히 작용했을 것 같다.

교수들이 국가정책에 참여해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이와 맞선다. 이런류의 대표적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신행정수도 정책이랄 수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와 강용식 한밭대 전 총장의 결합은 세종도시를 잉태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뒷말도 있지만 정치와 교수의 정책적 결합이 가져온 효과를 제대로 보여줬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어줍잖은 선거운동 참여와 대선 전리품을 노리는 행태가 될 것 같다. 국회의원 공천은 드러나기나 하지만, 정부부처 자문역, 학술용역, 각종 위원회 참여 등 일반인들은 어림도 못하는 부분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손을 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라는 사회적 신분을 이용해'나를 따르라'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선거운동 행태는 대선 메뉴얼에서 이제는 사라져야할 것 같다. 학칙이 허용하면 현직을 유지하든, 휴직을 하든 '대학과 대선'에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구조 역시 문제 이다.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지만, 정치영역과 관련법에서 이런 점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교수들이 지니는 교과서적 의미를 높이 샀기 때문 아닌가 싶다.

법과 도덕, 양심은 엄연히 구분되지만 결국 같은 개념이라할 수 있겠다. 대선을 앞둔 '폴리프로페서'들에게 후자의 의미를 새삼 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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