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는 삶
죽음을 준비하는 삶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3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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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훈 일 주임신부 <초중성당>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니 벌써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가 보다.

화창한 시절에 푸르름과 젊음을 과시하던 무성한 잎들이 어느새 땅에 떨어져 힘없이 바람에 굴러다니며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아서 세상에 태어난 후 온갖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덧없는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낙엽처럼 떨어져 남에게 밟히는 무덤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일찍이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이사야 406)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남의 죽음을 자주 직면하면서도 자기는 죽음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해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또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도 마치 세상의 부귀영화를 영원히 간직할 듯이 살아간다.

하지만 불로초를 구하려던 진시황도 죽었고, 세상에서 날고 뛰던 영웅호걸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고 공평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 이 세상과 저 세상, 이승과 저승의 문제는 가장 심각한 당면과제이며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어야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색의 계절과 때를 같이해 다음달 한 달을 위령성월로 설정하고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루빨리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처럼 우리도 죽을 인생임을 명심하여 보람 있는 삶을 통한 복된 죽음을 준비하도록 배려했다.

특별히 다음달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고, 살아 있는 우리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연옥영혼들이 어서 빨리 하느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온 세계 가톨릭교회가 한마음으로 기도와 희생을 바치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은 하느님의 바다 같은 은총으로 살아 있는 기쁨을 체험하고 있지만, 죽음이 확실한 이상 언젠가는 우리도 역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남의 무덤을 예사롭게 찾아주고, 남을 위해 기도하지만, 다음 차례에는 남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죽음이 소중하듯이 다른 이들의 죽음도 소중하게 준비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죽음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죽음 중에 가장 가슴아픈 것이 자살이다. 그런데 그 자살이 사회적 강요에 의해서 이뤄진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의 사회 양극화가 심해져서 상위 20%의 사람들은 막대한 부와 즐거움을 누리며 살지만, 80%의 사람들은 계속되는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그중 30%의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자살자들의 대부분은 이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강요된 죽음, 억울한 죽음, 계획된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정신을 차리고 나와 가족과 이웃을 지켜줘야 한다. 누구나 한 번씩 겪어야 하는 죽음을 소중하게 준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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