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일손돕기 미덕을 보이자
농촌에 일손돕기 미덕을 보이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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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 상 득<편집부국장>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1년 동안 흘린 농민들의 구슬같은 땀방울이 알알이 영글어 농촌 들녘은 온통 누런 황금물결로 넘실댄다.

농민의 깊게 팬 주름이 한층 더 깊어 보이는 것은 올 여름이 유난히 힘들었던 터일 것이다.

지긋 지긋한 장마,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뒤엎어 버릴 듯한 기세의 태풍, 병해충은 왜 그리 극성스럽게 때가 되면 나타나는지.

이 모든 어려움을 뒤로 하고 들녘은 온통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며 고개를 떨군 채 그동안 농민의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대풍작을 이뤄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결실의 기쁨도 잠시, 고령화가 된 농촌은 수확조차도 쉽지 않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농촌은 언제나 바쁜 농사철이 되면 일손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일손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품앗이'라는 것이 생겼던 것 같다. 품앗이란 일을 하는 '품'과 교환한다는 '앗이'가 결합된 말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생활에 있어서 꽤나 지혜로웠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예로부터 농업을 근본으로 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농업을 근본으로 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나눔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 나눔의 미덕은 다름 아닌 품앗이다.

품앗이는 농촌의 공동 노동관행 중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었으며, 품에 대해 보답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갚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품앗이는 이웃과 서로 오고가는 정으로 통했던 하나의 매개체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이웃의 어려움이 있으면 대가 없이 도와주는 나눔의 미덕이 있어왔다. 이 나눔의 미덕이 바로 하나의 품앗이로, 오늘날 우리 농촌을 지탱하는 역할이면서 서로 공생하는 길이기도 했다.

60∼70년대의 우리 농촌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자기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개는 논밭이 없는 사람들은 품을 팔거나 아니면 남의 논밭을 얻어 소작 농사를 짓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가난한 집 농민들은 청하지도 않아도 이웃의 허드렛일을 돕는가 하면, 남자들은 일손이 바빠지는 가을 수확철이면 자청해서 들일을 돕기도 했다. 특히 바쁜 농사철이 되면 가래질하기,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추수, 지붕의 이엉엮기, 퇴비만들기 등에 집중적으로 이웃을 오가면서 일을 도와줬다.

농촌에서는 가족단위로 농사를 지었지만, 일손이 부족할 때 이웃들이 품앗이로 일손을 덜어줬다. 그렇다고 해서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받은 사람도 다시 도와준 사람의 일손을 덜어줌으로써 빌려 쓴 일손을 갚는 것이다. 이처럼 곤궁에 처하거나 불행이 닥쳤을 때 품앗이 농사를 지으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가족들의 노동력을 빌려 쓰고 갚아주고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생활한 것이 한국민의 근성이고, 또한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촌의 생활방식이다.

지금 농촌은 가을걷이를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국민 모두는 여가 생활도 좋고 나만의 휴식도 좋지만, 휴일 하루쯤 자녀들과 함께 농촌으로 나가 가을걷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농민들의 일손을 돕는 것은 어떨는지.

다행인 것은 그나마 지자체나 각 사회단체가 농촌일손돕기를 하나의 행사로 펼치고 있어 농민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FTI로 인해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이런 농민들의 깊게 팬 주름살이 펴지도록 작지만 국민 모두가 나서서 나눔의 미덕으로 일손을 덜어주자.

그래서 땀으로 얼룩지고 주름이 깊게 팬 농민들을 위로해주고, 또 어린 자녀들이 농민들의 땀방울이 밴 우리 농산물의 귀중함을 알도록 하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될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한번쯤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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