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의 독백
군수의 독백
  • 박병모 기자
  • 승인 2007.10.1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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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 병 모<부장(진천)>

지난 12일 오후 증평군의회 본회의장.

군의회가 제36회 임시회 2차 본회의를 열어 군정질의를 벌이던 중이었다.

날카로운 질문과 두루뭉실한 답변이 오간 이날 회의장에서 몇몇 방청객과 집행부 실·과장들은 극히 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사전에 배포한 질의자료에 따라 군수, 부군수로부터 지루한 답변을 들은 뒤 실·과장에 대한 보충질의 시간이 되자 첫 번째로 나선 김선탁 군의원은 유명호 군수의 최대 공약사업인 '증평도·농교류 교육문화체험특구'사업의 문제점을 의제로 꺼내들었다.

작심한 듯 20분으로 예정돼 있는 보충질의 시간을 다 쓰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김 의원은 10분 이상을 더 써가며 꼬여만 가는 특구문제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주무부서장인 안석영 경제활력추진단장(사무관)을 집중 추궁했다.

한국농촌공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지 2년이 넘도록 사업이 일보진전도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따지면서 특화사업자인 농촌공사와 불필요한 감정싸움에만 매달려 1년 이상을 허비한 점을 강한 어조로 나무랐다.

안 단장이 교묘하고도 효과적인 어법으로 빠져 나가려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던 김 의원이 고삐를 늦추지 않고 관련법규를 제시해 가면서 날을 세우자 안 단장은 일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특구조성사업이 좌초된 원인을 따지기 위해 집행부와 의회, 공사 등 3자가 모여 토론회를 갖자는 안을 의회가 벌써 두차례나 냈는데, 이런 사실을 공사에 통보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 의회를 경시하는 거냐"고 질타하는 대목에선 본회의장은 일순간 싸늘한 분위가 돌 정도였다.

안 단장이 코너에 몰리는 듯한 분위기로 흐르던 그 때, 그에게 뜻하지 않은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바로 유명호 군수였다.

집행부 좌석 선두에서 질의답변을 경청하던 유 군수는 갑자기 뭔가를 적더니 일어서서 몇 걸음 앞에서 쩔쩔매는 안 단장에게 다가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참고해(이렇게 말했는지 확실치는 않다)"라고 귀엣말을 했다.

순간 질문하던 김 의원은 물론 집행부 실·과장, 방청객들이 모두 당혹해 했다.

잠시 후 자리로 몸을 돌리는 유 군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독백하는 듯했다.(육두문자를 썼다는 이도 있었으나 그렇진 않아 보인다.)

안 단장이 이후 어떤 대답을 했는지조차 관심을 갖지 못할 정도로 당시 이 광경을 목격했던 많은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해프닝에 어리둥절했다.

유 군수의 '일에 대한 열정'을 탓하고자 지나쳐도 무방한 '10초 해프닝'을 굳이 꺼내든 게 아니다.

기자는 다만, 그의 직설적인 행동이 자칫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돌이킬 수 없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해서 거론해 보는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집행부와 의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걱정스러웠다.

집행부는 의회가 사사건건 집행부에 발목걸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의회는 의회대로 "우리처럼 집행부를 도와주는 의회가 있으면 나와보라"면서 억울해한다.

이번의 경우 의회도, 방청객들도 유 군수의 이런 언행을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잡음은 들릴 것 같지 않다.

의회의 오랜 '관행'을 깨고 단체장이 주무과장을 직접 변호하고 나선 점, 단체장이 푸념하듯 내뱉은 말이 도대체 뭘까 하는 데 대한 궁금증은 임시회 폐회와 함께 사그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유 군수가 특구조성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이런 궁금증이 무의미할 수도, 의미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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