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청주시민건강축제 글짓기 대상작 - 아빠의 풍치
제 3회 청주시민건강축제 글짓기 대상작 - 아빠의 풍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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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서경중학교 2학년 9반 양유진
청주 서경중학교 2학년 9반 양유진

"저기 있잖아. 잇몸약 하나 사다줘."

아빠는 무엇이 그렇게도 창피하신지 엄마께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엄마를 똑바로 보지 못하시고 얼굴을 거실 바닥으로 떨구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신다.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부터 잇몸약을 사오래요. 상태가 어떤지 좀 보여줘요."

엄마는 깜짝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아빠의 잇몸 상태를 살폈다.

"어머 당신 잇몸이 왜 이래요.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어요."

아빠의 잇몸을 이리보고 저리 살피면서 엄마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치아가 삐뚤빼뚤한 엄마는 하얗고 고른 아빠의 잇속에 반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장난스럽게 가끔씩 나와 동생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엄마께서는 지금 앞에 있는 아빠의 입 안 상태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게 제발 담배 좀 그만 피우라고 말했잖아요. 잇몸이 이렇게 망가지고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엄마는 원망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아빠께 핀잔을 주면서 병원부터 가자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빠가 피우신 담배의 니코틴 성분이 치아 사이에 치석으로 쌓이면서 잇몸을 망가뜨리고 치아가 흔들리는 풍치까지 온 상태라서 담배를 끊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병원을 다녀온 후 아빠는 담배를 끊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나이 마흔 중반에 풍치가 웬말이냐는 엄마의 원망을 들으면서 이번엔 정말로 담배를 끊는데 성공을 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보이셨다.

그동안 여러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를 찾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매번 실패를 했었다. 하지만 아빠의 이번 결심은 그때와는 달라 보였다. 금연초를 사다 피우시기도 하고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껌을 씹기도 하셨다.

아빠께서 금연을 시작하신지 벌써 5개월이 되어 가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 한 편에서 창문에 대고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대던 아빠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바람이 거실 쪽으로 불어올때면 담배연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 아파 할 일도 없어졌다.

담배 냄새가 차지하고 있던 우리 집은 빨간 봉숭아꽃과 보라색 바이올렛의 향기로 가득하다.

베란다에도 아빠가 담배를 피우시던 자리에 늘 있던 재떨이 대신 초록색의 스킨다빈스가 근사한 화분에서 싱싱함을 뽐내며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빠는 금연을 하고 병원에 다니시며 잇몸 치료를 계속하고 있어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허물어진 잇몸을 다시 되살리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차가운 음식을 드실때마다 이가 시리다고 하신다. 치아를 드러내며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으시던 아빠께서 이제는 잇몸을 의식하시는 지 지난 날의 그런 웃음을 보이지 않으신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볼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빠에게 풍치라는 병을 안겨준 것처럼 담배는 피우는 사람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담배연기에 괴로워했던 지난날을 떠올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막심한 피해를 준다. 담배는 한 순간에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소리없이 우리 삶에 파고들어 와서 조금씩 천천히 삶을 파괴해 버린다.

아빠께서 이 살인무기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안도의 한숨을 들이키며 담배로부터 완전히 멀어지는 그날에 호탕하게 웃으시던 지난 날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건강해진 아빠의 잇속이 엄마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설레게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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