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장독대
엄마의 장독대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3.05.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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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친구가 찾아와 보따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풀어보라고 눈빛으로 재촉한다. 그 눈짓에 보자기를 풀어 헤치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겹겹이 포장을 한 물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의아해서 그녀를 바라보니 마저 풀어 보라고 눈짓을 한다. 마지막 비닐을 벗기니 작은 백자 항아리가 나붓이 반긴다. “너 주고 싶어서 그이 모르게 가져왔어” 제 남편 모르게 항아리 한 점을 챙기려고 가슴 졸였을 그녀를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은 뒷전이고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비싼 물건 아니라며 손 사레를 친다. 그렇게 목단이 그려진 백자 항아리가 가당치도 않게 내차지가 되었다.

며칠 동안 친구를 생각하며 항아리를 들여다보고 괜스레 킁킁거려 냄새도 맡아본다. 그 옛날 내로라하는 집 문갑 위는 아니더라도 부엌 선반에 좋은 자리는 차지하고 대접 받음직한 모양새다. 친구에게 물으니 화초 병은 아니고 양념류를 보관하던 백여 년쯤에 만들어진 항아리라고 했다. 한때는 온 가족의 입맛을 살리는 양념을 간직했을 뽀얀 항아리를 보고 있자니 고향집 뒤란 햇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엄마의 장독대가 떠올랐다.

엄마의 장독대는 마당보다 높게 단을 쌓아 높이고 바닥은 납작한 돌들을 평평하게 깔고 틈새는 자갈을 깔아 놓았다. 꽃을 좋아하던 엄마는 장독대 주변에 여러 종류의 꽃을 심으셨다. 봄이 되면 하얀 옥매화 꽃이 피기시작하고 명자나무도 덩달아 시샘하듯 붉게 피어났다. 봉숭아, 족두리, 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장독대 주변과 토담아래는 내 유년의 놀이동산이었다. 숨바꼭질 할 때 장독대 항아리 뒤는 내가 곧잘 숨는 장소가 되어 주었다.

햇살 좋은날에는 항아리를 비롯하여 커다란 독을 덮고 있는 뚜껑들이 일제히 열리는 날이다. 그런 날에는 나도 덩달아 장독대 주변을 맴돌며 종종거렸다. 사금파리 그릇으로 꽃잎과 풀잎 뜯어 소꿉놀이를 하며 엄마가 빨리 장독대에서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장독대 갈무리를 끝내고 내려가고 나면 장독대 주변은 비로소 온전하게 내차지가 되었다. 나는 엄마를 흉내라도 내듯 작은 항아리부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내 키보다 더 큰 간장독을 까치발로 들여다보고는 했다. 그러면 어느 날에는 구름이 내려와 흐르고 있고, 어느 날에는 뒷동산이 긴 꼬리를 감추듯 엎드려 있었다. 가끔씩 꽃을 찾아온 벌 나비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런데 까만 간장독이 가장 눈부실 때는 따로 있었다. 해질 무렵 햇살이 커다란 간장독을 찾아올 때였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잠시 투박스런 독을 휘감아 돌면 그때부터 간장독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독이 되었다. 눈이 부시게 빛나는 안을 들여다보면 짠 내나는 간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붉은 햇살이 무지갯빛을 산란하고 있었다. 햇살이 그려낸 그림은 눈부시게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아마도 뽀얀 백자항아리를 며칠을 애써 들여다봐도 친구에 대한 고마운 마음 말고는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어려서부터 투박한 항아리를 보고 자랐으며 그 주변을 맴돌며 유년을 보냈기 때문일 게다. 무엇보다 목단항아리에서는 흐르는 구름도, 납작 엎드린 산 꼬리도 볼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고, 항아리를 휘감아줄 눈부신 햇살을 만날 수 없는 까닭일 게다. 뽀얀 백자 항아리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고추장을 담으면 고추장 항아리가 되고, 된장을 담으면 된장항아리가, 소금을 담으면 소금항아리가, 쌀을 담으면 그대로 쌀독이 되어주는, 그 무한한 혜량이 좋다. 뚜껑을 열면 정겨운 이야기가 금방이라도 줄줄 엮어져 나올듯한 옹기항아리가 나는 마냥 좋기만 하다. 항아리를 바라보며 문득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소망하건데 햇살 담뿍 머금어 눈부신 간장독 같은 그런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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