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억 드는 '통장 자리'
연간 30억 드는 '통장 자리'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7.10.01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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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인 섭<사회문화체육부장>

청주시내가 요즘 통장 선출로 떠들썩하다.

전체 933개통 가운데 658개통에서 새로운 인물을 통장으로 뽑고 있으니 동네마다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일상에 바쁜 직장인이나 젊은층들이야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복수 후보가 나선 지역은 단체장이나 의원을 뽑듯 처음으로 주민투표 방식이 도입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통장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은 이들에게는 투표까지 해야하는 일인지 의아하기도 하고, 왜 인기가 있는지 흥미로울 수 있다.

통장에게는 매월 20만원의 수당과 출무수당, 상여금 200%, 중·고교 자녀 학자금 혜택이라는 제법 짭짤한 '대우'가 보장된다.

시정홍보나 민원처리가 주업무여서 본업을 하면서도 가능해 40∼60대 주부나 남성들에게도 '탐나는 자리'가 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 셈이다.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은 1일, 2일 4개 지역에서 주민투표로 통장을 뽑는다. 38곳 가운데 26개 통장을 새로 뽑는 이 지역의 경우 22개 지역은 단독으로 신청하거나, 조정됐지만, 4개 통은 결국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두 곳은 여성후보 2명이 나왔고, 나머지 두 곳은 남녀후보가 나서 주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인근 수곡동 역시 신규 임명할 통장 25명 가운데 복수 후보가 나선 2개 통에 대해 지난달 14일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가구당 1표씩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주민투표에 나선 후보들은 활동 포부를 밝힌 자기소개서를 투표장 입구에 게시하거나, 일부 지역은 후보들이 홍보물을 만들어 지지자들과 함께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는 열띤 경합도 벌어졌다. 이런 식으로 통장을 뽑았거나 이달초 주민투표를 실시할 지역만 해도 줄잡아 50여곳이 넘는다.

대개 50가구 안팎을 1개 반으로, 6∼10개 반을 통으로 조직하는 일반적인 행정단위를 고려하면 적게는 200가구에서 많게는 400가구 안팎의 대표를 투표로 뽑고, 자신들이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할 정도의 '자리'가 된 셈이다.

곳곳에서 선거가 치러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 역시 선거인 탓에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침 저녁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한 동네 주민들이 패가 갈리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다보니 일부 동사무소 관계자들은 '후유증이 심할 것'이라고도 진단한다. 이런 분위기 탓에 동 직원들이나 직능단체장들은 혹여 오해를 살까 선거와 관련된 언급은 일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정한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시의원들조차 '득보다 실이 많다'며 일체'불개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재미있는 얘기도 들린다.

무슨일이든 일정한 부작용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자치단체와 주민간 가교역할을 하는 '통장'에 이처럼 관심이 쏠린 것을 보면 마치 기능이 침체됐던 '모세혈관'이 살아나는 듯해 도시 전체가 활기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주민투표 확산과 주민 관심도, 집중도는 점차 커질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런 현상이 앞서 진행된 수도권지역에서는 자질 검증, 객관적 업무능력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거나, 주택 밀집지역은 이렇게, 아파트 지역은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논의가 꽤 활발한 모양이다. 행정의 시각에서 '주민화합을 위해 누가 적합하냐'는 정도의 기준에서 벗어나 통장에게도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분이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주만 해도 통장 수당은 연간 30억원이 넘는다. 10월부터 일을 새로 시작할 '동네 살림꾼'들은 적지않은 예산 규모나 높아진 사회적 관심도를 유념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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