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강나무꽃이 피면
댕강나무꽃이 피면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3.05.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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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백야수목원에 갔다가 댕강나무꽃을 보았다. 곧 아버지 기일이 다가온다. 4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훌쩍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더디게 흘러간 듯도 하다. 잘 지내다가 한 번씩 아버지 생각이 나면 후회와 아쉬움으로 마치 멈춘 듯 길고 서늘한 시간에 잠겨 아버지의 부재를 잊어보려 애쓰곤 했다. 그런데 요즘 몽테뉴의 `어떤 기억을 얼마나 남길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 애쓰지 않아도 평온하다.

아버지는 댕강나무꽃을 좋아하셨다. 다복다복 꽃송이가 흐드러지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 짙은 향에 발길을 멈추곤 했다. 아버지는 벌을 몇 통 치셨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 옆에서 곧잘 벌집을 들여다보며 몸집이 좀 큰 수벌과 배가 뚱뚱한 여왕벌을 찾아내며 놀았다. 일벌의 부지런함과 꿀벌 사회의 질서, 각각의 역할 같은 얘기들도 들었다. 꿀벌들은 오달지게 핀 댕강나무 꽃송이마다 파고들어 끊임없이 꿀을 따 날랐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신 꿀에서는 항상 댕강나무꽃 향기가 났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이 꽃을 특별히 좋아한 이유도 최상의 밀원(蜜源)이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5년 전 가을, 아버지는 대장내시경검사를 받기 위해 상시 복용하던 혈전용해제를 며칠 끊었다. 그로 인한 혈전에 뇌혈관이 막혀 갑자기 쓰러지셨다. 집 근처에 있는 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을 오가며 해를 넘기도록 치료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옮기시는 날 집에 잠깐 들르셨다. 아직은 쌀쌀함이 감도는 이른 봄이었다. 댕강나무 옆에서 휠체어에 앉아 한참 동안을 햇볕 아래 앉았다가 학교 가기 싫은 아이처럼 마지못해 차에 오르셨다. 그러고는 댕강나무꽃이 한창일 때 바람이 되어 돌아오셨다.

발인 날, 장손자의 품에 안겨 집 안팎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그 꽃 앞에 멈춰서서 오래 서 있었다. 아무도 말 한 적 없지만, 그 시간 모두의 마음속엔 꽃을 보며 웃으시던 아버지가 있었으리라. 나는 그때 혹시 아버지가 떠날 날을 스스로 정하신 건 아닐까 생각했다. 유난히 아끼던 꽃이 만개한 날 아픈 육신의 옷을 벗어놓고 자유를 찾으신 것일지도.

그해 여름에 우리는 아버지 없이 꿀을 떴다. 꿀 뜨는 일은 보통 이른 새벽, 벌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시작되는데, 힘들고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동안 한 번도 거들지 못했다는 생각에 또 가슴이 미어졌다. 작업은 오전 내내 이어졌고 끝날 때까지 누구 하나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하면 불효를 씻을 수 있기라도 하는 양. 정오 넘어 일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배워 양봉을 시작한 이웃집 아저씨가 많이 도와주셨다. 꿀은 양도 많고 병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되직했다. 봄에 한 번 뜰 걸 건너뛰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날 가져와 주방 수납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꿀 병을 꺼낸다. 먹어버리면 아버지의 기억도 사라져 버릴까 차마 뚜껑조차 열지 못했던 마지막 꿀이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한 숟가락 떠 입안에 넣어본다. 꽃향기는 좀 희미해졌지만 진한 꿀맛은 그대로다.

아버지 기일엔 친정집 댕강나무꽃도 난만(漫)하겠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향기로 환영해줄 것이다. 자식들 오는 날이면 밖에 나와 기다리다 반갑게 맞아주시던 아버지처럼. 댕강나무 꽃말은 환영, 평안이라고 한다.

그땐 늦은 안부를 여쭐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그곳에서 평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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