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조건상의 생애와 사상
동천 조건상의 생애와 사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0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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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대학교 교수>

충북의 선비 동천 조건상(趙健相) 선생께서 91세로 타계했다. 결곡한 인품대로 조촐하게 장례를 치를 것과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함까지 유언했다는데,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1916년 청원군 북일면 은곡리에서 출생하신 선생은 일생을 교육과 학문에 헌신하다가 2007년 9월 17일 영면했다.

1990년을 전후하여 후학에게 경계의 말씀을 내리고,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선생의 정신은 형형히 살아 이 땅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던 분이다. 충북대학교 교수와 학장으로 남긴 족적은 충북사회사에 길이 남을 것이거니와 충북의 큰 별이 졌다는 점에서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상적으로 동천은 성리학자 이이와 송시열로 이어지는 조선 이기철학의 기호예학과 기호사림에 속한다. 또한 동천은 근대의 단재 신채호와 의암 손병희를 숭앙하는 지사(志士)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기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동천은 기(氣)를 앞세우는 율곡과 우암의 계파를 계승했지만, 더 정확히는 기를 중심으로 하는 주기철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동천은 주기론자(主氣論者)이면서 이이와 송시열의 학인(學人)인 셈이다. 동천은 교육자, 학자, 지사로 평생 청빈과 절조를 지키면서 주기론과 아울러 인간의 성정에 대한 심성론과 삶의 방법에 대한 수양론에 깊은 사유를 거듭했다. 그런 점에서 동천의 사상과 언행은 근대 충북지역의 정신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동천은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춘추대의론과 위정척사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민족주의적 화이관(華夷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천의 화이관은 중화중심주의가 아니라 청구 즉, 조선의 자주를 견지하는 민족자주의 세계관이었다. 동천의 세계관에서는 천하의 변경인 일제(日帝)나 서양은 진정한 타자, 즉 적이나 상대가 아니었고 교화해야 할 이(夷)로 간주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동천의 일본과 서양에 대한 인식은 면암 최익현의 '짐승의 마음과 행동을 하는 오랑캐'(禽心獸行之虜)와 유사하다. 하지만 동천은 동양의 도와 서양의 문명을 결합한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서양을 배우는 한편 근대의 신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선생은 문학을 국가주의와 민족의식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인식했다. 글을 쓸 때는 옛것을 본받으면서 새것을 창안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부분적인 요소를 합쳐서 새로운 뜻을 만드는 합변지기(合變之機)의 전통적인 방법에 따랐다. 글에는 도(道)가 실려 있어야 한다는 문이재도의 원칙에 따라서 문학을 국가건설과 민족의식 앙양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문학을 '학(學)'으로 간주하지 않고 전통적인 문장관인 도문일치(道文一致)와 문이재도의 '문(文)'으로 간주하면서 국가주의와 민족의식 앙양을 위한 방편이자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천은 논문보다는 전통적인 고문(古文), 한시, 시조 등을 많이 썼다. 동천은 특별히 시조를 많이 썼는데, 그 이유는 천(天), 지(地), 인(人)의 삼재로써 주자학적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깨달음에 이른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몸과 마음을 조심하면서 깊은 생각으로 도리에 이른다는 거경궁리(居敬窮理)가 시조 창작으로 드러난 것은 지극히 소당연(所當然)한 일이다.

동천은 학문을 함에 있어서 명석함이나 재주를 특별히 경계했다. 신중하고 겸허하며 소박하고 정결한 것을 제일의 덕목으로 간주했다. 동천에게 학문이나 글보다 중요한 것은 언행이다. 근대의 분석주의적 논문과 같은 글은 인간의 도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학자가 우선해야 할 것이 아니며 학자는 모름지기 명분을 지키고 도리를 찾는데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망하게 재주를 자랑하고 가볍게 글을 쓰며 경박하게 언행하는 것을 특별히 경계하였으며, 안분자족(安分自足)하면서도 시류에 따라서 현대적인 것을 수용할 것을 가르쳤다. 따라서 동천의 언행과 족적(足跡) 자체가 비견할 데 없는 깊은 글이고 훌륭한 논문이며 뛰어난 저서다. 정신으로 일생을 살았던 충청도 선비 동천의 정신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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